[2024.12.22일 설교 초안]

자녀입니까?

by 최희규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바울이 강조하는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선언에 기초한다.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종이 주인의 비위를 맞추며 했던 행동들(율법)이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녀이며, 자유인이 되었다.


그래서 우상의 음식을 먹어도, 전혀 꺼릴 것이 없는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이 정도 재량권은 있다.


오늘날 용어로 치면, 주일성소, 헌금, 금식기도, 새벽기도, 봉사 등의 구태의연한 율법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자들은 '종' 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이런 율법들로 사람들을 옭아매어 '종'으로 남겨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목사들이 바울을 좋아할리가... (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을 또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바울은 이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 받으라고 이야기 한다.


자, 그럼 여기서 걱정이 된다.


'아, 불안한데? 정말 예배 안드려도 돼?'


바울은 자신있게 말한다.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하지 말라고 말한다. 넌 이미 자녀다.


그럼 예배는 왜 드려? 헌금은? 새벽기도는?


이런 질문 앞에서 바울은 말한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자녀이기 때문에 필요없어 보이는 그 예배, 기도의 형식은 오직 이웃사랑으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예전에 고 정주영 회장의 집안을 촬영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온 가족이 (장남부터 막내까지)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모든 며느리들이 밥을 차리고, 온 가족이 식사를 한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을 중심으로 기계처럼 움직인다. 출근할 때 일렬로 도열해서, 그들은 인사하고, 정주영 회장이 출근하자. 그때서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이 방송을 보면서, 자녀라기 보다는 직장 권력에 의한 부하직원들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진 않는가? 거대한 자본을 가진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우리는 새벽에서 부터 '종'이 되어 일한다. 이런 율법을 바울은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드리는 금식기도와 새벽기도와 예배는 이웃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이미 구약에서 부터 누누히 강조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사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바울은 이미 이웃사랑으로 표현되는 우리들의 예배는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표현한다.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젠 걱정하지 말자.


하나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종처럼) 예배 안드려도 된다. 헌금 안해도 된다. 기도 멈춰도 된다. 다만, (자녀로써) 이웃을 향한 예배와 헌금과 기도는 멈춰서는 안된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빛과 소금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 모양이 되고 조리돌림 당하는 이유는, 아직도 종처럼 하나님 비위나 맞추려고 나를 위한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이 예배는 독선적이며 이기적이다. 마치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뜯어내기 위해, 주인의 비위를 맞추며 상황 봐서 월급 좀 더 받으려고 하는 종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목사들 역시 이렇게 스스로 종이 되어서 노예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을 수록 자신들의 수입이 늘고, 권력이 생긴다. 때문에 그들의 종노릇을 막기는 커녕, 부추긴다. 그렇게 그들은 바울이 말한 것 처럼 저주 받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된다.


갈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자녀가 되어라. 당신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당신을 존귀히 여기며, 자녀 삼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거늘, 어찌 이 사실을 의심하느냐?


갈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더 이상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받을지 말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응답을 할지 말지, 헌금을 하면서 하나님이 100배로 줄지 말지 등의 눈치 보는 행위는 멈춰라.


우리는 자녀로써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가장 장남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습을 이 땅에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이 땅의 사람들에게 보여지자.


나의 예배는 이웃을 향한 예배이며, 나의 기도는 이웃을 위한 기도이며, 나의 헌금은 이웃을 위한 헌금이 된다. 그렇게 우리의 율법은 완성이 된다.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오늘날 교회는 이웃을 위한 봉사, 섬김, 자비, 사랑의 행위를 사회복지 차원의 것으로 치부하고, 주일 예배 따위의 율법이 가장 중요한 무엇인것처럼 이야기 한다.


이런 목사의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않는 주의 자녀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드려지는 예배, 헌금, 봉사, 등의 행위들 깊숙한 곳에는 '나'를 위한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시커먼 속을 갖은 자들은 결국 '종'은 될 지언정, '자녀'가 될 수는 없다.


종들은 예배를 드릴 수록, 기도를 할 수록, 헌금을 낼 수록, 점점 이기적이고, 나만 알고, 독선적인 신자들이 될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렇게 된 모습은 아마 당연한 결과일것이다.


자녀로써 이웃을 사랑함으로 예배를 드려라.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예배를 벗어나 자유롭게 이웃과 교제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자상한 사람이 되어라.


자녀로써 이웃을 위해 헌금을 드려라. 그렇기 때문에 헌금을 무지성으로 헌금함에 넣는 행위보단, 좀 더 의미있게 누군가를 섬기고 배려하는 일에 사용해봐라.


자녀로써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 그렇게 이 땅의 전쟁과 기근과 재난과 계엄이 있는 곳에서 눈물을 흘려라. 평화와 정의와 공의를 위해 움직여라.


비로소, 이 땅은 하나님의 자녀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