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본문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였다.
하나님이 홍수로 사람들을 죽였다는 내용에 대해서 예상한 대로 아이들은 과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 부터 시작해서, 홍수로 심판 안한다고 약속하고는 구라쳤다는 등.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불신앙적인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베터랑 목사 아니던가. 자고로 목사란 그럴듯한 말로 합리화 시켜 사건을 무마시키는 스킬의 대가다. 하나님을 변호하는 변호사 아니던가. 그동안 갈고 닦은 신정론을 한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홍수의 심판 사건은 오늘날에 발생하는 자연 재해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인간은 각자의 죄로 인해서 죽음으로 심판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야. 사형수가 사형으로 심판을 받듯, 우리는 그렇게 죽어야 할 사형수같은 죄인이라는 의미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들의 죄값을 치루도록 재판하시고, 언제든 다시 시작하실 수 있는 분이야. 우리는 오늘 홍수 사건에서 그것을 배울 수 있지"
"하지만, 오늘 이야기에서 강조하는 건 홍수 보다는 무지개야. 하나님은 인간이 또 죄를 짓고 심판을 당하면 또 홍수 비슷한 것으로 심판하시고, 다시 시작하실 거야. 그런데 이게 계속 반복될 것이 뻔하니까.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신거야. 그 다짐이 바로 무지개라는 거지. 어쩌면 스스로 제약을 거신 거지. 다 죽이고 새로 시작하는 손쉬운 방법 대신에. 이번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자.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을 살려보겠다. 너희들을 다 죽이는 대신에 이번에는 내가 죽더라도 .... "
"이런 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야. 그러니까 홍수 심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게 되는것이고, 그 홍수 사건이 있으니까 이 무지개 약속이 얼마나 하나님 스스로가 엄청난 제약을 걸면서 까지 우리를 위한다는 것도 알 수 있겠지."
"어쩌면 이 홍수 이야기가 진짜 일어난 사건이라기 보다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게임 케릭터 처럼 쉽게 지웠다가 다시 시작하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라."
"심판보다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런 문학적인 장치를 사용했다고 읽어도 괜찮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무 하나님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싶을 때 부정적으로 사용하려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충 이런 식의 설교가 끝나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나는 봤다. 속으로 매우 뿌듯했다.
막내가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다. 자기가 마무리 기도를 하겠다고 한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사무엘 (10세) : 하나님, 당신은 싸이코패스 입니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
오늘날의 신정론은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