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러닝크루 모집 중 (feat. 하나님) - 남자는 풀입니다.

by 최희규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고향, 루쉰]


김응교의 <곁으로>에서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 어디에 완성된 형태의 낙원(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2. 희망은 걷는 행위다. -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발을 내딛는 순간 그곳은 미래에 길이 될 것이고, 그 방향성이 바로 희망이다.


3. 희망은 공동체의 연대다. - 걷는이가 많아질 때에 길이 된다. 한 개인의 원맨쇼가 아닌, 아픔의 현장 그 '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 그 발걸음이 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걸으라고 하신 그 길을 걷다보면 우리는 길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어쩌면 완성된 천국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천국을 만들기를 원하시는게 아닐까?


에덴동산은 이미 불칼로 막혔다.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리고 성경에서는 그 이후로 생명나무에 대해서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하나님과 걷기로 한 그 '길' 자체가 생명나무라는 것을.


수천년 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았고, 그렇게 걸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신 누군가의 '곁으로' 가기보다는 그저 나만을 위한 생명나무에 집착하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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