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깔짝깔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떡씨 Oct 26. 2020

돌아보면 손 흔들어 주려고

두 끼째 참치 김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익숙함의 시기는 왜 오는 것일까.'

나는 분명 참치 김밥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지나 권태롭기까지 한 시기는 왜 오는 것일까.'

두 끼만에 좋아하는 것이 질려버리는 현상을 체감하며 생각했다.


두 끼째 먹는 참치 김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마요네즈의 양이나 참치보다 더 큰 단무지에 대해서. 참치 김밥의 맛있음에 경탄하는 순간은 지나고, '그래서 이게 다 뭔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오지 않아도 좋을 시간은 대체 왜 오는 것일까.


문제는 그것이었다. 경탄이 끝난 후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던 그 시절. 경탄이 없다면 의미라도 있어야 했다.

'이제 네가 반짝반짝하지 않은데, 손에 익은 머그컵 같기만 한데, 나는 왜 너와 함께 해야 할까.'

나를 설득할만한 무언가를 네게서 찾지 못했을 때 나는 너를 다시 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들 아는 그 시간. 있는지 없는지 인지하지 못했던 장기가 훌쩍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 나를 권태롭게 하던 그 모든 것들이 징글징글하게 그리워지는 시간.


문제가 존나 크면,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선 존나 존나 큰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가 쬐끄맣다면, 의지도 쬐끄만 것 보다 쬐끔만 더 크면 된다. 그래서 난 존나 큰 의지를 가진 사람보다 '무엇이든 작고 가볍게 만드는 사람'이 위너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감정에 있어서는 그 작업에 번번이 실패했다. 감정은 그 무엇과도 관련 없이 독야청청하여서, 이성이 아무리 로비를 해도 들어 먹지 않는다. '세상에 남자가 많고, 연애는 다시 하면 되지 않겠니'라는 설득력 있는 사탕발림에도 감정은 작아지지도 가벼워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장기가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을 견뎌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경탄이든 의미든 네게서 찾을 게 아니었다. 네가 무엇을 가진 사람인지보다 내가 너와 있을 때 어떤지, 너와 무엇을 나누었는지가 더 중요했다.


나를 아주 좋아해주다가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나의 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농담으로 그를 잘 웃겼지만 그를 제대로 바라보진 않았다. 그의 불안함, 작게 떨리는 목소리,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며 나를 오래 바라보는 눈동자 같은 것들을 농담으로 유야무야 시키긴 잘했어도, 그것들을 들여다 보진 않았다. 내가 잘할 줄 모르는 일이었고, 그걸 들키기 싫어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오래 되면, 농담 뒤에 가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은 조금씩 말라가고 끝내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나는 등 돌리고 앉아 그의 위로 받고 싶은 마음에게 얼어 죽어라 굶어 죽어라 말라 죽어라 한 것이다. 그 등을 보며 오래 버틸 제간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런 것들을 이제야 알게 됐다는 사실이, 네가 나의 기회비용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서늘해지는 밤, 나는 이불 끝을 발가락 사이에 끼고 잠을 기다린다. 그리고 상상한다. 뒤돌아 걸어 가는 네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너를 바라보는 나를. 혹시 돌아보면 손 흔들어주려고 서 있는 나를.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은 물감을 흘리며 뛰어가는 팔레트 같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