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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Jul 26. 2022

2022년 7월 일기 모음

6/27

내가 싫어하는 것. 페스티벌, 콘서트, 맛집 줄서기, 워터밤, 유난 떨기, 4시간 이상 밖에 있기, 캐리비안베이 등등. 이 모든 싫어하는 것들이 봄날의 벚꽃처럼 만개하는 계절이다. 남이 하는 건 좋다. 나 대신 해주면 나는 구경하면 되니까.


7/2

지금은 아침 7시다. 나는 전날 술을 마시면 다음날 오히려 일찍 일어나는 습성이 있다. 어제 클럽에 처음 가봤다. 거의 진공 상태와 같은 무소음의 이 아침에 고요히 어제의 광란에 대해 되새겨봤다. 클럽에 들어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모두 무엇을 위하여 이러고 있는가...' 였다. 내 친구는 입장하자마자 골반을 오른쪽으로 휘휘 돌리고 왼쪽으로 휘휘 돌렸다. 거의 팔도비빔면. 그것을 두 시간 가량이나 했다. 무엇이 그녀의 골반을 돌리는 동력이었을까. 골반 만큼이나 돌아버린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아, 저것은 한의 정서다. 몇 개월 간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새 프로젝트 배포에 매진한 나머지 한이 쌓인 것이다. 여기 있는 젊은이 모두 그런 것일까. 현대 젊은이들은 매우 고달프구나 생각했다. 나는 이름 모를 젊은이들의 터져나오는 고달픔을 목격하며 광란 속에 묘하게 우울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클럽 방문이 될 것이다.


7/3

어떻게 살더라도 만족스럽거나 충분하거나 완전하거나 진리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그저 흘러간 시간이 있을 뿐. 하루하루는 해일처럼 들이쳐왔다 빠져나간다. 매일 새로운 해일이겠지만 거기에 어떤 의미는 없다. 절대로 적응되지 않는 지독한 사실.


7/4

하회마을에 다녀왔다. 세 번째 방문이다. 여름엔 처음 와봤다. 토토로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이보다 더 초록일 수 없는 초록색과 더 하늘일 수 없는 하늘색을 가진 마을이다. 하회마을이 좋은 점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부용대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고 대청 마루에 앉아 가만히 있고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가만히 있고.


7/5

여름에 길을 걸을 때는 팔 안쪽이 하늘을 향하게 한다. 그래야 팔 안쪽과 바깥쪽을 골고루 태울 수 있다. 옛날에 누가 알려준 비법이다. 물론 그래봤자 팔은 고등어처럼 안쪽은 하얗고 바깥쪽은 짙게 그을린다. 햇빛 속에서 고등어를 굽듯 팔을 뒤집다보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7/7

연필로 일기를 쓴다. 연필로 쓸 때의 속도감이 내 생각의 속도와 맞다. 말이나 키보드는 내 생각이 진전되는 속도보다 빨라서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생각이 오길 기다려야 한다. 연필로 쓸 땐 그러지 않아도 된다.


7/10

요즘 주짓수 끝나고 매일 맥주를 한 캔씩 마신다. 하루 한 잔의 와인이 건강에 좋은 것처럼 하루 한 캔의 맥주도 어떤 건강한 효과가 있는가 싶어 찾아봤는데 그냥 살만 찐다고 해서 기분 존나 잡쳤다.


7/11

오늘 학교에 갔다. 나는 가끔 아무 일이 없어도 그냥 학교에 가고 싶다. 가서 청룡탕도 한번 보고 도서관도 가보고(도서관 올라가는 계단에 에스컬레이터가 생겼다.) 법학관도 가본다.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든 생각은, 요즘 '신나고 즐겁던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신나고 즐겁던 적이 없다. 그 어린 나이에도 지금 같은 텐션이었다. 약간 우울하고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섞이지 못하고 '이거 뭐하러 하지', '배워서 뭐하지'하는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도 크게 할 일은 없었기 때문에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열심히 왔다갔다 하며 수업을 듣고 네이버 블로그에 '시발 이게 다 뭐하는 짓거린지 모르겠다'고 썼다. 학교에 오니 땅바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스무살의 내가 보이는 듯했다. 언제나 이런 사람이었다는 게 한편으론 슬프고 한편으론 위로가 되었다.


7/12

본가에 갔다. 엄마, 아빠와 저녁에 맥주를 마셨다. 엄마가 아빠한테 물어봤다. "지금 애들을 키우면 더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빠가 대답했다. "더 잘 키운다기보다 해줄 수 있는 게 더 많지 않을까. 옛날엔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준 게 많았거든."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는 후회했다. 엄마, 아빠는 최고의 것을 해주었다고, 그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었다고 말하지 못한 것을.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 알갱이 같은 기억을 오래 곱씹는다.


7/13

즐거움만을 취하거나 고통만을 취할 수는 없다. 뭔가를 취하면 그에 따르는 즐거움과 고통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 선택은 그런 것인 것 같다. 즐거움은 많고 고통은 적은 것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에 따르는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7/14

저녁 반찬으로 비엔나 소세지를 먹었다. 나는 비엔나 소세지를 좋아한다. 조리 없이 차갑게 먹어도 맛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체의 조리를 귀찮아 한다. 아궁이가 불편해 가스레인지를 만들어주면 가스레인지가 불편해지고 가스레인지가 불편해 전자레인지를 만들어주면 전자레인지가 불편해진다. 그리하여 손가락으로 버튼 몇 개 삑삑삑 누르는 짓도 안 하게 된다. 구제가 불능하다. 효석과 비엔나 소세지를 먹으며 말했다.

  "이거는 핑거 푸드라고 할 수도 없어. 아가리 푸드야."

  "맞아. 처먹는 데 핑거까지도 필요 없어. 그냥 아가리에 때려 넣으면 되니까."

  "근데 핑거푸드 뜻이 그게 맞냐."

  "모르지."

우리는 킬킬거렸다. 이게 문제다. 멍청한 애랑 멍청한 애가 멍청한 소리를 하면서 낄낄거리니까 인생이 뭔가 즐거운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하나도 즐겁지 않은 인생들이면서...


7/18

나는 다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퇴사할 땐 내게 아주 딱 맞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은 별로 없다. 사실 소망만 있었지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예견된 일이었을 지도. 전에는 이력서를 쓸 때 '시켜만 주면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디든 한 1년 다니면 지겹겠지' 하는 생각 먼저 든다. 그럼에도 묵묵히 다니게 되는 것이 어른의 길인가...


7/19

내가 방이랑 거실을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으면 효석이 "또 소중한 전기와 신성한 이온을 실존적 탐구라는 하수구에 흘려 보내고 있어?"라고 묻는다. 이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거다. 뭐라고 나와 있냐면...

  '그 모든 것의 허망함을 곱씹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몹쓸 짓인 이유는, 진화가 선물한 그 소중한 전기를, 너무나 많은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끼고 너무나 많은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써야 할 신성한 이온들을 실존적 탐구라는 하수구로 흘려보냄으로써 글자 그대로 "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죽은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효석은 책을 읽다 말고 이 구절을 낭독해줌으로써 나를 문학적이고 치욕스럽게 놀렸다. 그 후로 이 문장을 일종의 밈처럼 쓰고 있다.


7/20

이직은 채워야 할 욕구를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이동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 입사하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싶다. 적응을 하면 좀 더 깊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 그 다음엔 인정 받고 싶다. 인정을 받고 나면 정체성을 찾고 싶다. 하지만 고차원적 욕구로 갈 수록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는 괴로움이나 권태를 불러온다. 그래서 이직을 해서 충족시키기 수월한 저차원적 욕구로 이동한다. 그렇게 평생에 걸쳐 욕구의 층위를 오르내리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이력서를 쓰기 싫어서 해보았다.


7/22

한 달 요약: 산책, 일기, 주짓수, 효석


7/26

요즘 애정이 부족하다. 나를 만나면 (불쾌하시지 않다면) 포옹을 좀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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