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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Oct 23. 2018

출근 일기

7년 전 그날 아침의 느낌도 오늘과 비슷했다.


당시 나는 약 일년간 백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유학도, 취업도, 창업도 모두 실패하여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신논현동 반지하 월세방에서 시간만 축내고 있었다. 그 생활이 헤어날 수 없는 굴레에 빠지게 된 것은 낮밤이 바뀌면서 부터였다. 오랜 군 생활로 정시의 알람처럼 살던 나도 낮밤이 바뀌자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잠을 못자니 뭘 할 수가 없었고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으니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멍한 채로 하루를 보냈다. 혼자 보낸 추석도,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지나고 몇 개월이 지나자 내가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건강이었다. 멘탈도 문제였지만 늘 몸이 각성과 무기력 상태를 반복했다.


평소와 다름 없던 어느날 새벽 다섯시였다. 
이대로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누워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왔다.
왜 그런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방안에만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두툼한 잠바를 챙겨입고 늦겨울 새벽의 강남 시내로 걸어 나왔다.  


내가 처음 보는 그 시간의 세상은 나를 변하게 했다.


나에겐 침대에서 뒤척거리는 시간 아니면 운이 좋아 잠이 들어 있었을 그 시간에도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전통시장인 논현동 먹자골목에 갔다. 이른 시간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솥의 증기가 새벽 겨울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나는 찬찬히 시장을 걸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하루를 시작했을 식자재를 내리는 인부들, 출근길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할머니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출근길로 향하는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뭇 장엄하기까지 했다.


대로변으로 나왔다. 서울 시내 각 지역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미 정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고, 도착한 버스에도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다들 자기의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학생들도 있었다. 새벽에 영어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단어장을 들고 걸어가는 무리들이었다. 그들도 여기까지 오기위해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왔을터였다.


이렇게 종횡무진으로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빨갛게 떠오르는 태양과 그 아래 움직이는 그림자들을 보면서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우선 쳇바퀴같은 굴레를 벗어나는게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모든 가산을 다 정리하고 동네 시장이 아닌 세계를 더 보자고 결심하고 여행을 떠났다.


약 4개월 후 나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지중해 한복판에 있었다. 운좋게 배 위에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아마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침 해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뭔가 넘치는 에너지를 받는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대인들이 태양신을 섬겼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평생 지중해 한 가운데서 솟구치는 태양을 또 언제 보겠냐며 전날 갑판에 나와서 잠을 청했다. 이윽고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나의 언어로 표현할 수 조차 없을 장엄한 태양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봤다. 나는 그것으로 이 여행의 목적을 이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긴 연휴를 마쳤다. 그간 부족했던 잠과 휴식을 충분히 가졌다. 또 생각도 많이 했다. 이제 한 해의 마지막 분기를 남기고, 또 회사로서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입장에서도 스스로에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올해 가장 이른 출근을 해보았다.


나름대로 교통 체증을 피하고자 일찍 나온것인데, 놀랍게도 여섯시만 되었는데도 이미 차량들이 도로에 즐비했다. 버스에도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가득했다. 7년전 그날의 아침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강을 건널때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롯데월드타워의 거대한 그림자를 뚫고 63빌딩의 외벽에 빛이 반사하며 장관을 만들었다. 강변북로를 내려보니 이미 빨간색 전조등의 불빛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나에겐 특별한 하루이겠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겐 늘 똑같은 평범한 하루의 아침일 것이다. 사무실 앞에 있는 편의점을 가니 밤을 새워 근무한 알바생이 있었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나보다 훨씬 먼저 와서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휴지통을 비우고 계셨다.


자, 새로운 아침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자.


오늘의 출근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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