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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Sep 20. 2019

리더십

나는 리더십이 없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왕따에 가까운 아웃사이더였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과정을 잘 따르는 모범생도 아니었다.


다행인것은 그런 나를 잘 알고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는 것이었다. 중학교때 도덕 선생님이 각 반에서 가장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모아 철학토론모임 같은 걸 만드셨다. 내 짝이 우리반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반장이었는데 나는 그 친구의 옆에 앉았다는 억지 주장으로 그 모임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거의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지만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의 모임에 들어가니 뭔가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이때 부터 시작된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아웃사이더가 인사이더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조직의 핵심에서 활동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실력이 되든 말든 자격이 되든 말든 왠만한 건 다 내가 하겠다고 먼저 손을 들었다. 뭐라도 참여를 열심히 해야 도태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서였다. 그래서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리더십이 있던 것도 아닌 나는 이후 잘 한 적은 없어도 학급 반장을 도맡아 했다. 그냥 내가 하겠다고 손을 든 것이 전부다.


대학교에 올라와서도 이어졌다. 나는 4년 내내 과대표나 학생회 임원을 했는데 일부러 이런 활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자원했다. 물론 내가 그만한 훌륭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래도 책임감이라는 것은 배우며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어떤 숭고한 삶의 목표나 그런 것도 없었고 순전히 집안 사정때문에 직업 군인으로 입대하여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중대장이 되자 직접 지휘하는 병력이 수십명이 되었다. 전시엔 그들의 생사를 내가 쥐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봐도 나는 정말 최악이었다. 항상 문제를 일으켰고 부대는 형편없었다. 사고도 치고 관심장교 생활도 하면서 꾸역꾸역 중대장까지 마치고 전역했다. 하지만 수십명의 부하들의 생사를 이끄는 경험은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대학원도 다녔다. 이때도 학생회장을 맡아서 했다. 파트타임 경영대학원이라 대부분 기업체의 중역들이 즐비했는데 가장 나이가 어린 축이었던 20대의 내가 그 일을 하게 된 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고 내가 하겠다고 손을 든 것이 다였다. 사회과학에 아무 배경이 없던 내가 이 분야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해야겠다는 경험에서였다.


전역 후엔 취업이 안되니 창업을 했다. 내가 내 사업을 리딩해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었고 회사가 성장하며 직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다른 식구들의 생계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었다. 그 부담은 사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다. 직원 급여를 주기 위해 수시로 대출을 받아가며 우여곡절을 헤치며 사업을 이어갔다.


지금은 어떤 모임에 가던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도 모임의 대표로 추대되는 일이 많다. 나는 여전히 취약하고 잘난 것 없고 모임을 대표할만한 간판도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해봤다.


리더는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많다. 난 적어도 이론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과는 지금도 거리가 많다. 그저 내가 조금 덜 뒤쳐지고자 하는 이기심으로 남들보다 반 발짝 더 갔을 뿐이다. 대학원 학생회장 공약발표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여기 저보다 더 뛰어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여기 저보다 더 똑똑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만약 학생회장이라는 자리가 잘나고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을 뽑는 자리라면 저를 뽑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만약 이 자리가 남들보다 더 겸손하게 열심히 일 할 사람을 필요로 하는 자리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나이도 가장 젊고 봉사할 수 있는 시간도 바쁘신 다른 원우님들보다 많으니 옆에 다른 후보자님들보다 더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지난 20년 동안 항상 리더의 위치에 있었다. 학창 시절엔 늘 반장이었고, 대학과 대학원때는 학생회장과 과대표를 계속 했고, 군대에서는 무려 6년간을 지휘관으로만 근무하고, 사업 이후에는 늘 대표만 하고 있다.
이 중에서 내가 잘나서 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다 나의 결핍이 나를 이끈 결과였다.


큰바위 얼굴을 보고 자란 소년이 나중에 보니 자신이 그 얼굴이 된 것 처럼, 좋은 리더가 되고 싶다는 나의 동경이 이끄는 삶을 살다가 돌아보니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이미 리더로 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타고난 리더도 있고 만들어지는 리더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탁월한 리더가 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일뿐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내가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20년 전 그때의 자세처럼 내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어떤 자리에서든지 더 적극적으로 봉사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고 보니 리더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리더로서의 삶은 살고 있는 것을 불현듯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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