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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Jan 02. 2020

날치의 진화




날치는 한번 점프에 최대 400미터까지 날 수 있다고 한다. 체공시간은 자료에 의하면 45초의 기록이 있다. 가장 유력한 학설은 천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점프를 하던 것이 진화된 것이라 하는데 오늘날의 날치가 날으는 모습을 보면 새가 날으는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거의 4미터 높이까지 뛴 다음 우아하게 글라이딩을 하며 한참을 날라간다.


날치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공룡이 사라진 약 6500만년 전 신생대 에오세 때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때도 이미 날개가 있는 형태로 발견된 것이니 초기 단계의 날치는 그 훨씬 이전부터 날개짓을 하고 있었을것이다. 중국의 연구진이 2억 4700만년 전에 시작하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중기 때의 날치 화석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이 중생대의 날치는 이후 멸종했고, 현재 날치의 조상은 신생대 때 별도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생대때 날치는 몇 미터를 날았을까? 아마 지금처럼 400미터를 날지는 못하지 않았을것 같다. 산소농도 같은 기상 조건의 영향도 받았겠지만, 무엇보다도 수천만년동안 비행실력이 늘지 않았다면 정말 상식적으로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목숨을 걸고 매일 천적을 피해 하늘로 점프하는 어린 날치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운동이나 레저가 아니라 뛰지 않으면 죽게 되는, 운명과도 같은 활강을 하루 종일 해야 한다. 운이 나쁘면 비행 중에 새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고, 더 운이 나쁘면 재수없게 낚시배에 떨어질 수도 있고, 더 운이 나쁘면 하필 낚시배 갑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선원들의 냄비 속으로 절묘하게 골인할 수도 있을거다.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이 날치는 매일 삶을 걸고 자신의 최선을 다해 하늘을 날려고 노력할 것이다.


날치의 수명은 모르지만 한 10년 정도 산다고 해보자.

목숨을 걸고 평생 점프를 쉬지 않고 하면 태어나서 죽기 직전까지 체공시간 0.5초 정도는 더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조금 더 여유있게 잡아서 10세대를 건너 100년마다 날치의 체공시간이 1초가 늘어난다고 해보자. 평생 0.1초만 더 나는거다. 

2020년의 날치가 45초를 날 수 있다면 2120년의 날치가 46초를 난다는 것이 불가능할까? 난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천년이 지나면 10초를 더 날게되어 3120년엔 56초를 날게되고, 서기 3520년에 이르면 날치는 1분을 체공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날치는 매 6천년마다 1분을 더 날 수 있게 되면, 9520년엔 체공시간2분, 15520년엔 3분, 21520년엔 4분을 날 수 있게 된다.

날치가 처음 등장한 6천만년전부터 진화한 지금까지는 45초를 비행하는데 그쳤지만, 앞으로 지금까지 지낸 시간처럼 6천만년이 지나면 날치는 이론적으론 한번 점프에 166시간을 날 수 있게 된다. 호흡을 하기 위해 유영중에 수면위로 나와서 호흡을 해야 하는 고래는 물론이고, 먹이를 먹기 위해 수시로 땅에 내려와야 하는 새들보다도 더 오래 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10년에 0.1초만큼만 더 노력하면 말이다.


어쩌면 같은 논리로 매 세대마다 날치의 꼬리가 0.1mm씩 늘어난다고 하면, 불과 몇 만년안에 날치는 날개뿐만 아니라 다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불과 몇백만년이면 사족보행에서 이족보행을 하게 될 지도 모르고 혀도 생겨서 발성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혀가 있는 어종은 이미 많이 있다. 발성을 할 수 있는 폐가 없는 것이 문제지.

생각해보면 어류는 정말 별의별 종류가 다 있다. 몸이 투명한 종도 있고, 전기가 흐르는 종도 있고, 심해에는 정말 기가막히게 못생긴 종도 있다. 앞지느러미를 발처럼 써서 기어다니는 물고기도 봤고, 물고기는 아니지만 용암 근처에서 서식하는 미생물도 있다. 이렇게 다채롭게 사는 수많은 생물들이 자신의 능력치를 아주 조금씩, 1/1,000,000 씩이라도 평생에 걸쳐 늘려서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십만년 정도 후에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다행히 나는 생물체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종이기에 학습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최초의 근대올림픽이 열렸던 1896년 인간의 마라톤 금메달 기록은 3시간 18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42.195km 비공식 세계신기록은 2시간의 벽을 넘었다. 불과 100여년만에 30%가까운 기록을 단축시길 수 있었던 건 인간의 지능이 축적의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굳이 날치처럼 나는 것이 아니라도 매일 나의 한계를 스트레칭 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내가 내일 헬스장에가서 런닝머신위에서 속도를 9에 넣고 뛰면 3분도 버티지 못할거다. 그런데 매일 뛰면 이 기록이 달라질거다. 5분도 되다가 10분도 넘기다가 나중에는 30분이나 한시간도 쉽게 느껴질거다. 사실 20대때 이 도전을 한 적이 있는데 한시간을 12의 속도로 뛰는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운동이라곤 전혀 모르던 나도 일년만에 하프 마라톤에 출전하곤 했으니, 날치처럼 몇백만년을 기다릴 필요까진 없겠다.


매일 외국어 공부를 30분씩 한다면? 매주 새로운 분야의 책을 한 권씩 읽는다면? 매주 나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한 명씩 만나 인터뷰를 한다면?

모든 가치있는 경험들은 나를 더 성장시킬 것이다.



오늘은 2020년 1월 1일이다.

새해 정초부터 왜 뜬금없이 날치 이야기 같은 뻘소리를 하는가 하면,

지난 10여년 동안 그러하듯이 올 해 역시 나는 꾸준히 글을 써보려 하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쓰다보면 내년의 나의 글과 10년 후의 나의 글은 얼마나 변해 있을까.

날치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하늘을 날 듯, 나 역시 삶을 걸듯 치열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러다보면 먼 미래에는 정말 훌륭한 글쟁이가 될 수 있겠지. 날치가 걸어다니는 상상을 하는 것 처럼.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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