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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Dec 05. 2020

습작2012050355

K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애초에 미달이었던 경쟁률이 막판에 4:1까지 치솟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불안감은 그의 심연에 가라앉은 자존감을 마지막으로 지탱해주던 것도 치워버렸다.


"애초에 다른 지원자들만큼의 스펙도 안되는 내가 과연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괜히 또 과거를 후회했다. 내가 대기업을 갔으면, 명문대를 갔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라고.

결국 그는 면접에 불참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긴 했으나 가봐야 안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늘 그랬듯 내려놓으니 그날은 늦게까지 잠을 잘 잤다.


면접관이었던 J교수는 K 지원자가 불참이라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

'불참이라니 희한하군. 유일하게 사전에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줄 정도로 의욕을 보이던 사람인데..'


J교수는 생각했다. '아마 이 사람이 지웠했으면 합격했을텐데 안와서 아쉽군"


*


가난한 기타리스트였던 B는 한 평도 안되보이는 연습실을 고시원 삼아 그곳에서 기거하며 연습을 했다. 침낭을 깔고 누우려면 다리를 구부려야 했고, 창문은 고사하고 한두시간마다 환기를 하러 밖에 나갔다와야 하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이곳에 놀러왔던 재수 동기 하나는 '여기선 미치지 않는게 이상하겠다'라고 했다. 


"맞아. 난 음악에 미쳐있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것 처럼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른다. 하루 열댓시간은 연습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 실력이 잘하는 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다.


젊음이 재산이라지만 계속 돈만 쓸 수는 없었다. 할줄 아는게 기타뿐이니 렛슨이라도 해서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습실 앞 공원에는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는지 물었다. 


"내가 살다살다 공부하겠다고 대학온 놈 중에, 연습하겠다고 휴학하겠다는 놈은 또 첨 본다."


수업시간조차 연습시간을 뺐는다고 생각하던 객기는 결국 그냥 흔하디 흔한 고졸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라는 꼬리표만 남겼다.


"요새는 렛슨도 쉽지 않아. 너 P형 알지? 그 선배 유튜브에 연습 영상만 올렸는데도 그것만 보고 렛슨 많이 받는다더라. 너도 연습 많이 하니까 그런거 찍어서 좀 올려봐"


그래. 요새 세상이 좋아졌지. 하긴 나도 렛슨 동영상보고 연습하니 렛슨비를 줄일 수 있었지.

그리고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의 연습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틀어본 유튜브를 내리 6시간을 보고 나서야 배터리가 부족하다고하여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우물안도 안되는 반평 독방에 갇혀 살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직장인 기타리스트의 영상을 봤다. 그는 무역회사의 차장이라는데 퇴근 후 두어시간씩 일주일에 두세번 연습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을 연습만 하는 나보다 훨씬 더 나았다. 어떤 중학생의 연주를 보았다. 난 그때 코드 외우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조 패스의 솔로를 똑같이 카피하고 있었다. 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차라리 독방에서 혼자 꿈을 꾸던 시절이 행복했다. 그때는 꿈이라도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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