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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Oct 28. 2024

변종모의 책

까탈 부릴 것 없고 따질 것 없는 낡은 마을의 선명한 햇볕이 창을 두드리고 간다. 다시는 못 올 시간이 야채를 담은 검은 봉지처럼 펄럭펄럭 휘날린다. 


참 여러 가지 마음이 들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떨어지거나 바닥나진 않았다. 



검푸른 허공에서 내리 꽂히는 빗줄기는 어둠을 빗금 치는 별빛의 잔해처럼 평화롭다. 



이 마을에는 드문드문 빈집이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집들은 계절의 간섭으로 살아간다. 인적 없는 뜰에도 꽃은 피고, 빛바랜 고지서들이 꽂힌 낡은 우편함에는 새들이 걸터앉아 계절의 소식을 전한다. 간혹 이끼를 덮어쓰거나 이름 모를 풀들의 점령으로 쓸쓸해진 담벼락마저도 아름다운 빈집.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中-


책을 읽다가 감명 깊은 구절이 나오면 밑줄을 친다. 변종모의 책을 읽을 때는 밑줄을 치지 않을 구절을 찾는 것이 더 수월하다. 그의 재능이 부럽다가도, 그의 만성적 쓸쓸함이 이런 섬세한 감성을 동반한 재능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살짝 위안이 된다. 변종모의 재능은 신포도로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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