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잘 자라는 계절이다. 채소들은 스치는 바람에도 한 뼘씩 자라나 감당이 안 될 정도다. 내가 실력 좋은 농부처럼 여겨진다. 흐뭇한 마음으로 하늘에 감사하고 계절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 시기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만 빼고 모두가 왕성하고 무성하다 싶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 또한 만족감으로 가득하니,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불행할 이유가 없겠다.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축배를 들어야 한다.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 中-
사방천지가 논밭이었는데, 그게 지긋지긋해서 도망치듯 전주로 올라왔는데 푸르른 것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한 뼘 텃밭도 허락되지 않는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대파 뿌리라도 심어놓으려면 화초박스가 필요하다. 어쩐지 실내에서는 채소가 잘 자라지 않는다. 베란다 난간에 철제 거치대를 설치하고 화초박스를 놓았다. 비도 맞고 아침 이슬도 맞고, 스치는 바람에 기지개도 켜고, 무자비한 햇살의 세례까지 받아가며 알아서 쑥쑥 큰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기특하다. 그러니 조물주가 있다면, 험한 노지에서도 용케 죽지 않고 살아가는 그대와 내가 기특해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