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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물 좋아하세요?

by 초이조


생일, 입학, 합격, 결혼, 집들이 등 살면서 선물할 일이 참으로 많다. 선물을 선택할 때는 목적, 상대방 나이나 취향, 가격 등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나의 선물을 고르는 센스까지 빛나보이게 하려면 최소 일주일은 고민하는 것 같다.


내가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깝지만, 받으면 기분 좋은 거를 사줘라, 현금이 최고다, 선물은 내가 갖고 싶은 걸 해주는 거다 등 선물을 둘러싼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러다 보면 선물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결론인, 아예 대놓고 상대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무엇을 갖고 싶냐고. 어떻게 보면 이 방법이 제일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해서 받은 선물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필요했던 만큼 요긴하게 잘 쓴다. 내가 준 선물을 잘 사용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인증샷을 보내주면 더 신나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은 사실 편지이다. 정확히는 손 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 편지를 그다지 쓰지도 받지도 않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는 친구들에게 줄 카드를 쓰고 나눠주고받는 즐거움이 있었다(화려한 팝업이 있는 카드일 때는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다.). 친구들 생일이거나 혹은 아니더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면 편지지 1~2장 정도 편지를 써서 주기도 했고, 싸웠을 때는 화해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현생에 치여 편지지를 고르는 것부터가 어느새 사치 아닌 사치가 되었다.


손가락으로 후다닥 쓰면 1초도 안 되어 상대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 편지는 번거롭다. 먼저, 상대에게 어울리면서도 편지 내용과 어우러질 수 있는 편지지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펜으로 바로 쓰면 틀릴 수도 있고 한정된 편지지 안에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기 위해 여러 번 머릿속에서 내용을 썼다 지웠다가를 반복한다.


펜을 든 순간부터는 실전이다. 손에 너무 힘을 주어서도 안 되고 적당히 움켜쥐고 써야 한다. 글씨체가 모나지 않도록, 첫 장과 뒷 장의 글씨체가 달라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하며 쓴다. 쓰다 보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새롭게 떠올라, 머릿속에서 정리했던 내용은 뒤죽박죽이 될 때도 많다.


경로를 이탈했던 이야기를 어찌어찌 마지막 인사로 마무리하고 나서 혹여라도 펜이 번질까 봐 후후 불고 말린 후, 반듯하게 접어서 봉투에 넣는다. 귀여운 스티커로 봉투를 밀봉하고 나면 드디어 끝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긴장이 확 풀린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 쓰고 나면 녹초가 되지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서 편지의 알 수 없는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손 편지를 쓰려고 한다. 평소에는 쓰기 힘들지만,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에는 되도록이면 편지와 함께 주려고 한다. 상대가 원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원해서이다. 어울리는 편지지를 고르고 이쁜 글씨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쓴다. 간혹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어휘력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편지를 쓰고 줄 때의 두근거림과 예상치 못한 편지에 놀라고 집중해서 편지를 읽는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게 참 좋다.


속물주의자이자 물질만능주의자인 나지만, 선물에서만큼은 편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임에는 틀림없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다. 오랜만에 아무 이유 없이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보는 당신. 어떤 선물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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