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특이한 자세

필리핀 생활일기 Ⅱ

by 최고야

필리핀의 새해는 요란한 폭죽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시계의 시침이 자정을 가리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상이 떠나갈듯한 폭음이 '따다다 다닥~펑' 하고 사방에서 경쟁하듯이 울려 퍼진다.


[환상적인 새해맞이 불꽃쇼]


새해를 맞이하여 악운을 쫓고 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도록 기원하는 중국인들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로 인해 많은 부상자가 생기고 심지어 사망자도 나오는 상황이 되니 필리핀 정부에서는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연휴기간과 새해 연휴기간에 폭죽 사용을 자제 또는 금지한다는 지침을 각 지방정부에 내려보냈다.


그러나 단속이 제대로 되지 않고 오래된 주민 정서도 무시할 수 없기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 같은 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해 아침에 도로에 나가보면 하얀 화약 잔재와 부스러기들이 뒤덮여 엉망이었던 적도 있었다.


[주워모은 간밤의 흔적들]


우리 집 바로 옆에서도 부유층들이 거의 1시간 동안을 돈자랑하듯 경쟁적으로 폭죽을 쏘아 올리는데, 다음날 아침이면 떨어진 잔해들이 마당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기다란 집게와 쓰레받기를 들고 하나씩 주워 담으며 속으로 끓어오르는 욕을 참는다. 어떤 것은 불발이 되었는지 화약덩어리가 그대로 뭉쳐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플라스틱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린 것도 있고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폭죽이 다 모여있다.


"이게 다 돈인데~ 거진 100만 원을 하늘로 날려버리는구나~"

"쏘려면 지네 집 위로 쏘지 왜 우리 집을 향해 쏘고 ㅈㄹ이야? 빌어먹을~"


구시렁거리며 주워서 모아놓으니 한 무더기가 쌓인다. 지붕 위에 떨어진 건 또 언제 올라가 치우나? 그냥 놔두면 또 녹이 슬 수 있으니 날씨 좋을 때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봐야겠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이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이 나라에서 살기로 내가 선택해서 온 것이니 싫으면 내가 나가야겠지. 에휴~


그래서 집 나가면 고생이요, 아무리 미워도 내 나라가 최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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