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들어온 후 한국 교회 선교단체 30여 명을 받아 5박 6일간 아침식사를 제공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한국 수원에 있는 한 교회에서 근처 부호(Buho)라는 동네에 작은 교회를 인수받아 리모델링한 후 설립예배를 드리기 위해 방문한 팀인데 참석한 남녀 청년들이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밤낮으로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2024년 3월에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강원대 병원 비뇨기의학과 암센터에서 3개월마다 하는 추적검사를 하고, 4월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의 결혼식을 무사히마쳤다. 그런 후 다시 일을 찾던 중 머물고 있는 원룸 근처의 F모텔에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걸어서 단 몇 분 거리에 있고 총 17개의 객실에 대실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조건이 아주 좋았다. 더군다나 1주에 2번 쉴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일을 정식으로 시작하기 전에 미리 가서 두루 살펴보니 아담한 사이즈의 3층 건물에 노부부가 노후대비로 여유롭게 운영하고 있었다.본인 소유의 건물에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은 분들이 일종의 소일거리로 운영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였다.
[사진출처 : Pixabay]
그 후 4월부터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려는데 숙박손님들이 퇴실을 하지 않아 청소할 빈 방이 별로 없었다. 퇴실시간이 12시이니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나가려나 보다 생각하고 다음날부터는 10시 또는 10시 반에 출근을 하였다.
일단 손님들이 퇴실하고 나면 가장 먼저 이불 커버와 매트리스 커버, 베개 커버 등을 모두 벗기고 사용한 타월, 어메니티, 쓰레기 등을 치우고 화장실 물청소를 한다. 그런 다음 새 커버를 방마다 가져다 놓고 물, 음료, 타월, 어메니티 등을 채워 넣는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청소기를 돌리고 새 커버를 씌우고 반듯하게 각을 잡아 세팅을 하고 마지막으로 물걸레질을 하면 방 하나의 청소가 끝이 난다.
어느덧 이 일을 시작한 지도 4년이 넘어간다. 처음엔 생각도 못했던 일인데 '코로나'라는 뜻밖의 상황에 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분야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막상 해보니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극성수기를 제외하고는 나름 해볼 만하였다. 더군다나 우리는 한 사람 몫의 월급만 받고 부부가 함께 일을 나누어하니 더욱 수월했던 면도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느꼈던 재미있는 사실은 팁(Tip) 문화이다. 어쩌다 외국 손님이 머물고 가면 테이블 위에 1달러 지폐나 1,000원 지폐가 놓여 있다. 청소를 깨끗이 잘해주어서 편하게 묵고 간다는 감사의 표시일 것이다.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이런 팁을 받으면 내가 정성껏 청소한 부분을 인정받는 것 같아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한마디로 1,000원의 행복, 1달러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외국만 나가면 팁을 잘 주기로 유명한 한국 손님들이 국내 숙박업소에서 팁을 놓고 가는 경우는 거의 아니 아예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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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필리핀 우리 집을 방문한 단체손님들을 모시고 유명 관광지인 팍상한폭포에 간 적이 있다. 팍상한폭포는 두 명의 뱃사공이 모는 작은 보트를 타고 급류를 거슬러올라가 폭포 안 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코스로 한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다.
보트를 타기 전에 팁은 미리 주지 말고 안전하게 돌아온 다음에 100페소씩만 주라고 손님들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데 정이 너무 많은 한국인들은 고생하는 뱃사공들이 불쌍하다며 500페소 내지는 1,000페소까지 통이 크게 쏘기도 한다. 그러면 다른 보트의 뱃사공들이 나는 왜 100페소만 주냐고 거칠게 항의를 한다. 결국 한국 손님들이 이용한 모든 보트의 뱃사공들에게 500페소씩 팁을 주고 나서야 소란스러운 상황이 끝난다.
이렇게 외국에서는 주지 말라는 팁도 펑펑 쓰는데 국내에선 왜 그리 인색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선 아직 팁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평소 현금을 소지하고 다니지 않는 영향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거의 모든 결제가 카드나 자동이체, 무슨 무슨 페이 같은 수단으로 이루어지지 현금이 없어서 팁을 주고 싶어도 못주는 것이 아닐까? (이젠 숙소 테이블에 팁 전용 계좌번호를 적어놓아야 하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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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할 때는 모텔 사장님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고려사항 중의 하나이다. 어떤 사장님은 수고한다며 계절마다 신선한 과일과 간식거리를 가져다주시는 분도 있고, 또 어떤 사장님은 복날이 되면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고 오라며 카드를 주시기도 하고,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되면 10~20만 원의 보너스를 챙겨 힘을 북돋워 주신다. 그러면 사람 마음이 없던 일도 더 찾아서 하게 된다. 반면 어떤 사장님은 그 무더위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데도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도 않고 자기 식구들끼리 수박을 먹어도 한 조각 먹어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인정머리가 없는 것이다.
구인광고를 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말로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면서도 막상 만나보면 남남 같은 삭막한 분위기에 일할 맛을 잃는 경우도 있다. 오너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직원들이 신이 나서 일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직원들을 먹여 살린다는 마음보다는 직원들 때문에 내가 먹고산다는 마인드가 진정한 오너의 마음가짐 아닐까?
그래도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전신운동이 되어 몸에 근육이 생기고 체력도 좋아진 것 같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잡념이 일절 없어지는 것도 좋은 점이다. 특히 지금 일하고 있는 F모텔의 좋은 점은집에서 가깝고, 대실이 없고, 1주에 두 번 쉬며, 근무시간이 짧고(10시 반 출근, 2~3시쯤 퇴근), 주인의 간섭이 일절 없다는 것이다.이 얼마나 좋은 직장인가~
그래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적어도 70세까지는 계속 일을 하려고 한다.
땀 흘려 일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조금 휴식을 취한 다음 저녁을 먹고 나서는 집 근처 산책길에서 매일 1시간 정도 걷고 들어온다. 내 나이 현재 65세에 이 정도면 제법 건강한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