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는 매년 9월이 되면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거리마다 캐럴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대형 쇼핑몰이나 가게마다 크리스마스트리 및 각종 장식품이 진열된다. 빌리지 안에 있는 집들은 제각기 화려한 조명과 전구로 집 전체를 장식하여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카트마다 각종 술과 식품들이 산더미처럼 가득 담겨 계산대 앞에 줄지어 서있는 모습을 보면 "아~ 이 사람들은 연말 파티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심지어 생일파티나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대출도 받는다고 하니 미래보단 현실에 충실하고 최대한 즐기려는 국민성이 새삼 느껴진다.
11월 초에 접어들면 필리핀은 완연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된다. 어디를 가더라도 화려한 장식을 볼 수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듣게 된다. 필리핀의 수도인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를 비롯한 대도시의 사람들의 생활 중심에 있는 쇼핑몰에서는 쉴 새 없이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파티를 즐기려는 필리피노들이 북적이는 대형 쇼핑몰에는 카트마다 각종 음식물과 주류들이 가득 담겨 계산을 기다리며 10m~20m씩 줄을 서있는데 어림잡아 계산해 봐도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어치를 카드로 턱턱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 입이 절로 벌어진다.
[대형 슈퍼마켓 카트마다 구입한 물건들이 가득가득 담겨있다]
가톨릭 신자가 국민의 80% 이상인 필리핀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열리는 축제 탓에 필리핀 사람들이 이런 행사를 좋아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정신과 뿌리를 형성하는 종교에서 정하는 가장 큰 길일인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정말로 무척 신나 보인다. 이곳에선 8~9월부터 이미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를 기다리면서 카운트 다운을 할 정도이다.
[쇼핑몰을 점령하고 있는 각종 크리스마스 용품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물에 잠겨있는 쓰레기 마을의 빈민촌 등 필리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풍경을 보다가 쇼핑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종교와 자본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더욱더 확실하게 들기까지 한다.
[집집마다 화려한 조명으로 집 전체를 감싸놓고 뽐내고있다]
각 빌리지에서는 집집마다 화려하게 장식을 하는데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 집을 선정하여 시상도 한다고 한다. 이곳 필리핀이 의외로 전기료가 비싼데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지 살짝 걱정도 되지만 사실 이 정도의 필리핀 부유층들은 전기료 신경은 전혀 쓰지 않을 것이니 나만의 쓸데없는 오지랖이랄까?
필리핀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풍경을 한번 보시죠!
[에필로그]
다 좋은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언제부턴가 집 앞 대성당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오더니 급기야 매일 새벽 4시부터 새벽미사를 하는지 야외 스피커를 통해 설교하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왜 굳이 밖으로 나오게 했을까? 동네 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인가?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당장 소음으로 인한 개인권 침해로 고소 고발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라서 그런지 성당에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마 수백 년에 걸친 식민지 생활을 통해 몸에 밴 순종과 복종의 국민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생일이 되면 노래방 기기를 임대하여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댄다.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려서 찢어지는듯한 소음이 울려도 그 누구 하나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즐거운 날이니 함께 축하해 주는 것이 이웃의 도리라고 한다. 세상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나도 언젠가 한국에서 꽹과리를 가져와서 맞불 작전으로 밤새 깽깽 쳐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가면 민원인들이 아무리 길게 줄을 서있어도 직원들끼리 잡담을 하거나 간식을 먹거나 딴짓을 하며 일처리가 늦어져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기다리는 답답한 사람들이다. 참지 못한 한국인이 큰소리로 항의라도 하면 큰일 난다고 잡혀간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사정을 한다. 이 때문에 허파가 뒤집어진 외국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ㅎㅎㅎ
그래도 어쩌랴~ 우리는 이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외국에서 온 이방인 들이니 이 나라에 맞춰 살아가는 수밖에 ㅠ.ㅠ 이게 바로 남의나라살이의 비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