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안드레아 Jun 24. 2022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에 관한 고찰

feat. 아판타시아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길 때 느끼는 불행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은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한 타인이 특정한 것을 얻었다면, (그 타인이 내 주변을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전자의 상황과 같은 불행을 느낄 수 있다. 이 경우가 바로 사돈이 땅을 산 사례이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나에게 처음부터 결핍이 있었지만 그것이 일상생활에 불편으로 거의 다가오지 않아서, 나중이 되어서야 남들은 모두 가능하지만 나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느끼는 불행이다. 이러한 경우의 불행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도 않았고 남이 새로운 것을 얻지도 않았으므로 실질적인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남들과 나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면서 새로운 불행이 발생한 것이다. 


아판타시아 Aphantasia 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는 인지장애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는 장애를 말한다. 눈앞에 없는 것을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떠올릴 수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빨간 사과라는 단어를 보고 머릿속에서 빨간색과 사과를 떠올릴 수 없다. 단지 글자 그대로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상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상상력이 필요한 직업이라면 다르겠지만,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애초부터 그런 길은 단순히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멀리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이 장애는 발견된 후 연구된 역사가 짧아서 기억력이나 사고력에 부정적으로 미치는 연구 결과를 본 적도 없다. 일단 없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가 겉으로는 아예 없는 수준이므로, 자신의 장애를 수십 년 인생을 산 뒤에야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발견한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남들과 나 사이에 변한 것이 없음에도 장애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함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내 상상력이 조금 부족할 뿐이었다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의 장애 때문에 남들과 달리 이야기에 공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렇게 생기는 불행을 생산적인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위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길 때의 불행은 당연히 생산적인 것이다. 필수적인 감정이다. 그래야 내가 가진 것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판타시아의 상황에서는 실제로 변한 것은 나의 감정뿐이다. 불행을 느낀다고 해서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기에 비생산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실질적이지 않은 감정이라는 것은 아니다. 불행을 느낀다는 점은 사실이다. 


불행을 느낄 때 사람들은 그 불행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바람직하게는 부단한 노력으로 내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때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대신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에서 상상력은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을 조금 잃은 대신 그로 인해 남들보다 더 발달한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내가 나아질 수 없으니 남들을 나와 같은 처지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이 경우는 내 상황을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비교적 매우 쉽게 행할 수 있으므로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아판타시아의 경우에는 곤란하여 (상상력에 대한 평가를 낮춤으로써는 가능하다.), 다른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운 애인을 만나며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나의 절친한 친구가 나의 애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성과의 교제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행복했던 나의 상황이 불행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갈 수 있다. 그러고는 친구의 애인에 대한 험담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다니는 것이다. 굉장히 비생산적이고 악한 방법이지만 이런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실제로 꽤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방관하거나 말리거나 하는 것은 선택에 맡긴다. 어느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의사결정 전에 위와 같은 생각을 거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뿐이더라도 그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릇된 현상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인과관계까지 분석해 본다면 미래 자신의 의사결정에도 도움이 되는 등 여러모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은 한 가지도 잘할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