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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연 Feb 05. 2024

이런 데모 괜찮은 건지

독일에서 30만명이 모인 데모에 간 후기

지난 토요일, 친구와 함께 30만명의 시민이 모인 데모에 다녀왔다. 독일에 이사오고 가 본 데모 중 가장 대규모였는데 사안은 사안대로 심각하지만 분위기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서는 대형 비눗방울이 날리고 양육자들과 함께 나온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노는, 언뜻 보기엔 소풍, 축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병맥주를 마시며 세찬 비가 내린 뒤 잠깐 고개를 내민 볕을 쪼이는 사람들, 곳곳에서 보이는 기상천외하게 재치있는 피켓들을 촬영하러 다니는 사람들. 한국에서 10대 시절부터 전경과 대치하며 물대포를 피하고, 채증 당하지 않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목이 쉴새라 소리 지르던 데모와는 너무 다른 풍경에 사뭇 당혹스러웠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브란덴브루그 개선문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종종걸음으로 전진해가는데 들판에 나온 양이 된 기분이었다. 양치기 개처럼 경찰들이 우릴 몰아세우진 않았지만 펜스를 설치해 일부 경로들을 제한해 놓았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여러 루트를 통해 인파가 몰리면 위험해질까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순간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음은 필연적이다.) 빙글빙글 작은 공원과 거리들을 거쳐 한참을 돌아갔다. 다른 때면 10분도 안 걸렸을 거리를 2시간만에 당도했다.


30만명의 인파였지만 누구도 그 정체에 성내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개부터 유아차에 탑승한 아이, 휠체어에 탑승한 이들 모두가 같은 속도로 행진을 했다.


2024년 2월 3일 독일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WirSindDieBrandmauer (우리는 방화벽이다), 독일 극우 정당 AfD 반대 시위


4시간 동안의 행진인지 산책인지 헷갈릴 피켓 전시 행동을 하고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나 오늘 충분히 한걸까’란 질문이 들 정도였다. 물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4시간을 서서 걷는 것만큼 진이 빠지는 일도 없었다. 그 장소에 가서 내 존재를 보이는 것만으로 이미 역할을 다한 것임을 깨닫고는 아무런 부채감 없이 친구와 고생했다며 베트남 식당에 가서 쌀국수에 큰 생맥주를 한 잔씩 시켜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데모의 배경은 독일 내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극우 나치 세력, 대안당(AfD)이 이주민들을 추방시킬 논의를 한 사실이 드러난 데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 정당이 애초에 성립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치스러운 과거를 끊임 없이 복기하며 반성하는 독일 사회의 노력도 적지 않다. 


데모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건 ‘혐오는 의견이 아니’라는 데에 독일 사회의 굳건한 분위기들 때문이다. (친구는 인터넷에서 보았다며 이 문구 ‘Hass ist Keine MEINUNG(혐오는 의견이 아니다)’를 적어 가지고 나왔다.) 이를테면 채용공고에서만 봐도 개인의 ‘인종, 출신, 국가, 피부색, 성별, 성 정체성, 성적 표현, 성적 취향, 종교, 나이, 장애 결혼 여부 또는 기타 보호되는 특성을 근거로 차별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친구가 제작해서 가지고 나온 피켓, "혐오는 의견이 아니다"
'나치들을 향한 자리는 없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한국에서는 촛불문화제라고 해도 많은, 데모의 끝에는 전경과의 긴장과 마찰이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에, 무너져가는 민주주의에 울다가도 싸워야 할 대상은 이 전경들이 아닌데...라는 아이러니에 부딪히곤 했다. 대중이라는 시민들의 행동과 존재감이 무서웠던 정부는 자꾸 심술 난 애마냥 사람들을 떼어놓지 못해 안달이었다.


많은 참신한 피켓들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웠던건 10대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가 쓴 모자에 ‘FUCK AfD’라고 적힌 문구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광경이었다. 어릴 때는 정치 선동에 휘말리면 안된다며 투표권도 주지 않고, 학교의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불이익을 가하던 한국 사회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정치가 무엇인가. 언제건 소수의 약자들을 향하는, 사회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시스템이 아닌가. 그 나이 때부터 ‘인종 차별'에 대해서는 엄중히 FUCK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는 가정환경에서 자라 날 아이의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나치, 히틀러 금지

내가 들고 나간 피켓은 독일인들이 특히나 즐겨 먹는 길거리 음식들과 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흘러 들어온 음식들에 대한 것이었다. ‘뒤너(케밥의 종류), 팔라펠, 피자, 쌀국수, 김치, 카베르네 소비뇽, 만두’. 그리고 끝에 ‘Gern’(얼마든지, 천만에 정도의 뜻으로 번역되는 독일 인삿말)와 웃는 얼굴을 그렸다. 내가 즐겨 먹는 것들이네하며 재밌게 적어내려간 ‘메뉴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극우 나치들이 일상에서 깨닫고 있지 못할, 독일 사회에 오랜 세월에 걸쳐 깃든 이민자들의 유산이기도 하다.

데모를 즐기는, 준비하는 자세


데모 장소로 건너가기 전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자마자 얼굴에 휘몰아치는 빗방울에 푸념을 했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댄데 아직도 이런걸 우리가 알려줘야 하냐’, ‘궂은 날씨의 일요일에 이게 무슨 고생이람.’ 같은 말들이었다. 그들이 보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존재감으로서 알려줘야지라며 투덜거리는 자세로 나갔지만 결국 배우고 돌아온 것은 나였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데모와는 사뭇 다른, 행진과 산책 사이에서 ‘일상 정치’라는 단어를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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