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냄새

by 최미연

억수로 추운 날이었다. 영하 15도인 한국의 한파에 비할 바이겠느냐만 독일은 해가 없기에 한기가 서리는, 으스스한 별개의 추위를 경험 할 수 있다. 지난주에는 2, 3번 야외 촬영으로 뼈에 한기가 스며 드는 나날이 있었다.


이 날은 게다가 무릎에 아직 통증이 있는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랩탑과 카메라, 트라이팟 10키로 짐을 메고 다녀야 했다. 대중교통 파업이 있는 날이었기에 집에서 가까운 S bahn이 없어 출근길 아침부터 40분을 걸어 전철역을 찾아다녔다. 올해 들어 두번째 파업인데 독일의 파업은 영국이나 한국처럼 연착되는 수준이 아니라 버스와 트람이 아예 안 다니고 U bahn 전철역이 모두 ‘폐쇄’되어버린다. 힘이 느껴진다.


겹겹이 껴입은 옷 사이로 땀을 흘렸고 출근하자마자 2시간 단위로 3건의 일정들이 이어졌다. 모국어로도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울 주제들이 다뤄졌는데 들리는 단어가 거의 없어 당황스러웠다. 스피커들은 인간이기보다 입력값을 읊는 것처럼 지친 기색이 조금도 없어 1시간을 마라톤 하듯이 말을 쏟아냈다.


퇴근 후에는 더 굉장했다. 중앙역에서 동역까지 15분이면 갈 거리를 장장 1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그것도 서두른 마음에 역을 잘못 내려 막간을 타 역사 내에 있는 테이크 아웃으로 저녁을 사 먹었다. 솟구치는 호르몬과 거의 종일 서 있어야 했던 일터에서의 피로 때문에 ‘반으로 잘라주세요’라고 특별히 주문했던 7유로짜리 타코를 80% 곧장 입에 우겨 넣었다.


영하의 날씨에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넣는데 에스켤레이터에서 반가운 얼굴 둘을 발견했다. 여전히 음식을 입에 문 채로 둘에게 촐싹이며 인사를 건넸다. 잘못 내렸어야 하는 운명이었구나. 긴 하루 끝에 이런 예기치 않은 만남을 선물 받으면 ‘그래. 다 이유가 있어’하며 숨은 행복을 샅샅이 들여다봐야 한다.


대중교통 파업에 영하의 날씨에 그리고 온종일 일한 하루 끝에 동역까지 넘어 온 건 다름 아닌 Daniel의 초대 때문이었다. 우리는 음악 취향이 곧잘 통하는 편이고 나는 그의 성품을 너무 애정하는데 얼굴을 못 본 게 반 년이 훨씬 넘었기 때문이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그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어깨와 무릎이 나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타코를 연료 삼아 칼바람을 뚫고 또 역에서 20분을 걸어갔다.


공연장에 어렵게 도착하니 때마침 그가 현금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날 입구해서 발견했다. 페이팔로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하는 사이에 티켓팅하는 사람이 페이팔로 결제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그 사이 핸드폰 전원이 나가버리고 결국은 Daniel에게 현금을 빌려야만 했다.


우리는 각자의 새로운 일 소식을 주고 받고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 <Kneecap>에 대한 찬사를 늘어 놓았다. 그가 데려온 친구와 셋이 한참을 얘기하다가 Paypal guy에게 아까 부탁한 핸드폰 충전기를 부탁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공연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손님들을 위한 공용 충전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특별히 대기실에서 자기 개인 무선 충전기 배터리를 가져왔다. 알고 보니 그는 두 번째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다.


공연장엔 나이가 30-60대의 남성들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20대에 홍대 클럽에서 마시고 자고 놀던 나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는 공연들에는 주로 까리하고 새침한 언니 혹은 예쁜 여자들이 주 리스너였었기 때문이다.


오프닝으로 나온 DJ의 퍼포먼스는 너무 충격적으로 좋아서 그가 마치 Chef인 것처럼 보였다. 비트들을 채소 다지듯 송송송송 썰어서 판을 교체하고 입력값을 넣고 하는 모든 행위들이 요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귀가 나갈 것 같았지만 감사해하면서 듣자하며 오랜만에 교회 나간 신도의 마음으로 열심히 세례 샤워를 받았다.


두번째 공연을 신나게 보는데 Daniel이 깜짝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히트텍까지 포함해 6겹을 입고 나온 나에 비해 팔레스타인 국기가 그려진 점퍼에 단촐하게 진과 컨버스를 매치한 그를 보고.. 역시 나랑은 골밀도가 다른건가 싶었다. 뭉개지는 소음 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매우 간만에 감전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카고에서 부러 넘어 왔다는 세번째 밴드보다 사실 이 밴드가 더 좋았다.


공연 텀 사이에는 바닥에 주저 앉아 쉬다가 동참한 관객 한 명과 수다를 떨었다. 스웨덴에서 왔고 두번째 공연 드러머의 파트너라면서 그들의 베를린 6년 거주 후 이주 계획을 듣는데 내가 다 설레고 신났다. 그 막간에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책임. 베를린에서 철들기 어려운 점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20대에는 보통 이런 이야기들을 취기에 절어서 엄청 힘주고 얘기했었는데 힘 빼고 털어내듯 이야기하는 나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작년이란 고개를 넘으면서 조금 경쾌하고 가벼워진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는 집까지 갈 방법을 강구하다가 갈 수 있는 곳까지 S bahn을 타고 결국 우버를 불러야했다. 튀르키예에서 오셨다며 나에게 한국말 인사를 들려준 기사님과 10분 가량 동안 독일어로만 수다를 떨었다. 진짜.. 짧은 독어지만 그래도 단어들이 좀 쌓이니 대화 아닌 대화가 이어진다. 어라. 이게 되네 싶어 쭈삣거리며 더 신나서 번역기를 돌려 가며 오늘 파업이어서 손님이 유독 많았겠어요?와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어릴 때엔 택시만 타면 기사님이랑 쉴 새 없이 수다 떠는 엄마가 그렇게 신기했는데.. 아까 공연장에서도 그렇고 죽이 맞는 사람 만나면 그렇게 자꾸 수다가 떨고 싶어진다. 나이 든다는게 이런건가 싶다.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대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행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20대에 홍대 클럽에서 밴드 음악을 마시고 먹고 자란 아이로서 오늘 공연장에서의 경험은 많은 기시감과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치만 사실 이 일기를 장황하게 쓰고 싶었던 이유는 밤에 마주한 장면 때문이다.


퇴근길 어김없이 푸드쉐어링으로 좋은 채소와 먹을 것이 많이 들어왔다며 전화 준 이웃 Bettina. 그에게 이번주부터는 출장을 가서 채소는 요리 할 기회가 없을 거 같다고 하니 요거트며 필요할 법한 것들을 불러준다. 그는 내가 밤 늦게 집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하니 챙겨서 복도에 놔두겠다고 했다. Bettina는 마침 우리 엄마와 동갑의 여성이다. 그 덕분에 나는 이 집에 이사 온 이래 큰 덩이의 빵을 사 본 일이 없다.


긴 하루 끝에 무거운 짐을 낑낑 짊어메고 윗층에 올라가니 어둠 속에서 꾸깃한 종이백 안에 추울 새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감자와 사과 댓개와 오이 하나 그리고 비건 요거트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시립고 어둡고 길었던 겨울밤, 종이백 꾸러미에서 사랑과 다정함이 뭉게뭉게 올라와 코끝을 스치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했다. 그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것을 기록하고 싶어 이렇게 근 몇 개월만에 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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