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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연 Jan 08. 2024

정착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

해외 살이 3년 차를 맞이하며

해외에서 유선 상으로 한국의 가족, 지인들과 나누는 새해 인사도 어느덧 3번째 해다. 사실 영국에서 1년, 독일에서 1년 반이니 3년차만큼의 밀도에서 오는 여유이기보다 조금은 분절된 느낌의 경험치들이 쌓인듯 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한 국가와 도시에서 1년의 시간은 이제 막 적응되어볼까하는 시점 정도이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지도를 보지 않고 길을 무작정 걸어도 방향을 잃지 않기까지, 레스토랑에서 먼저 손님들에게 건네는 ‘How are you today?’가 입에 붙기까지 1년이 걸렸다. 


2번째 신년을 맞는 베를린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은, 친구와 따뜻한 방 안에서 글뤼바인을 끓여 먹는 여유를 누릴 줄 알게 되었으며 2024년 1월 첫 주에는 무려 2022년도 첫해 세금 신고를 해냈다.


2년보다도 3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낌이 좀 더 무게 있게 다가온다. 얼마 전 송년회 모임에서 한 지인이 ‘한국에 언제 오냐’라는 인사를 받는 것도 시간이 지날 수록 빈도가 줄어든다던 이야기가 부쩍 자꾸 생각났다. 한 해가 지날 수록 서로 향유하는 문화와 정치, 경제적 상황들의 차이가 커지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무얼 놓치고 사는 걸까 싶은, 알 수 없는 조급함도 든다. 우리집 고양이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갈텐데 치아 건강은 괜찮은 건지와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다.


지인과 안부를 주고 받던 중 나도 모르게 ‘아직 정착 초기라 우당탕탕 중이에요’라는 말을 적었다. 오랜만의 안부에 등장한 ‘정착’이란 큰 단어에 놀란 그는 ‘와! 거기서 정착하려고 준비하시는 거에요? 정말 멋져요..’라는 말을 보내왔다.


내가 구사했을 때 단어가 주는 느낌과 상대의 문자에서 읽힌 같은 단어에서 문득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순간 ‘선언’을 해버린 것 같은데 과연 여기서 얼마나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인지? 왜 여기서 살고 싶은 것인지?란 원론적인 질문이 오랜만에 고개를 들었다. 당장 먹고 살 것들과 행정, 주거지, 일자리 찾기 등에 온 신경이 다 쏠려 있었기에 정작 놓치게 되는 것들이다. 실제 베를린 살이 1년 차는 이미 집 찾는 데에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 영혼이 탈곡되었기에 신년이 들어서야 비로소 지각 능력이 되돌아오고 있는 기분이다.


삶의 근간이 되어주는 주거 공간에 대한 안전성이 통째로 흔들렸기에 정착이라는 주제에 끊임없이 질문을 했던 거 같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의미를 더 확장하면 지인에게 말했듯 ‘정착’은 내게 안전하고도 기꺼이 모험 할 수 있는 나만의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결핍과 불안을 잘 들여다보고 그것을 가다듬어가는 것. 어디서건 언제건 마주하게 될 스스로의 내면을 다루는 과정으로서의 ‘정착’.


외국인/이민자로서 겪게 되는 혼란과 한국과 독일 사이 어딘가에서 영원한 이방자로 부유하는 외로움은 필연적이지만 결국 정착은 장소에 구애 받기 이전에 내 안의 중심을 찾는게 아닌가한다. 올해는 이전의 동경하고 좋아했던 스스로의 모습들을 되찾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그 여정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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