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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인 Oct 24. 2022

무명배우,  스폰서로부터 300만원이 입금되다.

내가 들은 말1


 15년 전. 그날은 정말 더운 여름날이었다.
 내가 자란 곳은 맥도날드나 피자헛조차 있지 않았던 시골이어서, 스타벅스라는 것도 티비에서만 보던 미지의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카페가 마치 성공한 어른들이나 가는 곳인 줄 알았으니까. 방학 때 학교 단체견학으로 서울의 대학교들을 탐방한 후, 인사동 쌈지길의 스타벅스를 가서 난생처음 커피 주문을 했다.
 
-커피 주세요
-아메리카노요?
-아 .. 커피요 그..그냥 커피요 그...먹는 커피
 
하고 당황해서 우물쭈물.
 같이 간 친구는 당시 방영된 시트콤 하이킥의 서민정 선생님이 즐겨 먹는 카라멜 마키아또라는 것을 먹어보고 싶다며 멋있게 주문했다. 직원의 추천 끝에 그냥 커피, 즉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고 맥심 맛 레쓰비 맛 더위사냥 맛 나는 커피를 기대했던 나에게 아아메는 차가운 한약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이게 맛있어지면 어른이 되는 거야 라고 말도 안 되는 그럴듯한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뭔가 슬픈 일을 겪으면 어른이 된 척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맛있어져 있을 거야 하면서. 쓴 건 몸에 좋아 하면서.
 
 그리고 5년 전. 그날은 정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날씨만큼이나 모든 것이 싸늘하게 느껴지던 때였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나는 알바와 촬영을 닥치는 대로 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고 그 모인 얼마 안 되는 돈조차 불안해하며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약속이 잡히면 항상 바쁘다고 핑계를 댔었고 끼니는 언제나 밥버거를 먹었었으니까.
그 당시 나는 해방촌에서 동생은 서울대 입구에서 각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둘 다 강남에서 일정이 있어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칼바람을 피해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뭐 마실래?
-나 배부른데 한잔 시켜서 나눠 먹을까?
 
 우리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 둘이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다. 심지어 우리 둘 다 아메리카노를 너무 쓰다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가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알면서도.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며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떨었다. 혹시나 누군가 우리의 지난한 삶까지 통채로 읽어버릴까봐, 서로 동의한 암묵적인 서러움을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가장한 채. 누나 된 도리로서 음료 한잔 하나 더 시키지 못하는 지갑 사정을 대놓고 드러내기가 멋쩍어하는 찰나, 진동벨이 울렸고 그는 커피를 가지려 자리를 비웠다.
 순간. 테이블 위에 그가 끼고 온 줄무늬 장갑이 보였다. 가까이 가져와 보니 보풀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 먼지가 엉킨 것은 물론이고 너무 많이 빨아서 쪼그라들었는지, 손을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유치원 아이가 쓸 만한  아주 작은 장갑이었다. 수세미인지 행주인지 알 수 없게 해진, 다 자란 스물다섯의 남자가 쓴다고는 믿을 수 없는.
 그리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너무나 큰 빵꾸가 나 있었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춰있는 것 같았다.
 그가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고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쓴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뜨거워서인지 목구멍이 연신 뜨거웠다. 울컥하는 커피를 억누르고 우리는 근황을 얘기했다. 연출을 꿈꾸는 그와 연기를 꿈꾸는 나의 공통주제는 그 뜨거워진 목구멍을 포도청으로 만드는 여러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내 주변에는 온갖 때가 묻은 그림자들이 곁마다 득실거렸는데, 그때마다 애써 쨍한 햇볕에서 광합성을 하며 내 그림자만 유심히 보곤 했었다. 내가 어떤 작품을 하고 싶고 어떤 연기를 꿈꾸는지보다 오늘 밤에 시간이 있는지가 궁금한 사람들로 들끓었으니까. 대화 몇 번으로 눈동자 한번을 흘깃하는 것으로 사람을 간파하기가 너무도 쉬웠다.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실망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과 마치 동의어 같았다. 반복되는 상처들 앞에서 어느 순간부턴 애쓰지 않은 냉소가 새어 나왔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놓인 가난한 나를 가련하고 고결한 사람으로 변호하면서도 내 앞에 놓인 빵꾸난 장갑을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훔쳐보았다. 분명 나 혼자 꾸는 꿈인데 그의 장갑 속 빵꾸가 늘어나는 데에 내 지분이 최소 8mm는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우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그의 장갑은 잘 정제된 갈색 소가죽으로 이루어진, 적어도 백화점 매대에서 39,000원에 할인되고 있는 어느 브랜드의 장갑일 테지. 그리고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음료와 케이크까지 먹고 있을지 몰라.
 헤어질 때 나는 너무 춥다고, 장갑을 빌려달라 했다. 아무렇지 않게 빌려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연신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마도 커피가 너무 뜨거웠나 보다. 목구멍도 화상을 입는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전화가 왔다.
 
-누나. 통장 확인해봐. 선물이야.
 
 스폰서라는 입금자명으로 300만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 선물은 내가 참 잘 살았구나 라는 류의 선물이라기보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라고 돌아보게 되는 류의 선물이었다. 통장에 찍힌 금액은 서늘하게 슬펐다. 그가 어떻게 모았을지 짐작이 안 되는 큰 금액이었으니까.
 서울대 입구 근처 백반집에서 2,500원에 나오는 소고기뭇국에 500원씩 낼 때마다 추가되는 밑반찬들 속에서 그는 얼마나 많은 날을 소고기뭇국 하나면 충분해- 하며 보냈을까. 불충분함 속에서 기어코 충분을 찾아냈을 그의 젊은 아침을 떠올리면 그 돈을 죽어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돈을 써야 했다. 옥탑방 월세를 내고, 촬영을 가기 전 옷을 사고, 옥탑방 근처 밥버거 집에서.
 집에 와서 장갑을 안고 한참 동안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장갑은 아직도 내 서랍에 고이 서려 있다. 나는 힘겨울 때 그 장갑을 생각한다. 그럼 세상에 힘들 것이 없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오늘. 정말 선선한 여름날이었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도중 동생도 작업할 것이 있다며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와 나는 각자 좋아하는 음료와 케이크를 시키고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서울대 출신의 방송국PD 타이틀을 얻고나선, 태초부터 아메리카노만 즐겼던 사람마냥 ‘얼죽아파’가 되었는데, 그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묘한 기시감과 촌스러운 궁금함이 들어 한입 마셔보겠다고 뺏어 먹어보았다.


빨대 속 커피 한모금에 모든 순간이 지나간다.

차가운 커피인데 이상하지. 목구멍이 또 한번 뜨겁고 울컥하다.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썼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2020년 여름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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