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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인 Oct 24. 2022

모태솔로가 베드신을 찍으면 생기는 일.

내가 들은 말2


-모태솔로라고? 그럼 연애 연기 못하겠네.

-살인을 해야만 살인자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니까요.



나의 대답에 순간 모두 정적에 휩싸였다.

연기라는 ‘학문’의 근거는 상상력에 기반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경험 역시 중요하지만 그 경험의 질이 중요한 것이지 경험의 횟수나 양 따위는 비교할 바가 안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경험에는 직접과 간접 둘 다 포함이고, 육체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간접경험이라는 자원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

하지만 흐름은 순순하지않았다.

내 발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태솔로라는 네 글자를 순결한 여자의 훈장 따위로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들이 멋대로 부여한 스테레오타입은 이내 성격적 결함을 가진 까다로운 여자라는 낙인으로 이어질 정도였으니까.


그저 까다로운 여자로 보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해보지 않은 것이(혹은 못한 것이) 배우로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경험이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경험이 없다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마치 살인을 해야 살인자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덧붙여 상호 합의된 쌍방의 연애 과실만 못 맺었을 뿐, 애절한 플라토닉 외사랑은 무려 7살때부터 시작해 꾸준히 그 계보를 이어오고있는 아주 조숙한 사람이라는 스스로만 아는 당당함도 있었고.

 


그러나 그 당당함은 다년간 수많은 편견들에 위축되기 일 수였고,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우로서 혹은 인간으로서의 결함 아닌 결함을 가리려 연애 경험을 위조(?) 하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6년간 사귄 애인이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헤어진 지 3년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자주자주 남친이 바뀌는 사람이 되기도 해서,

가끔 누군가가 그래서 잘 만나고 있어? 라고 하면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않아 대화주제를 돌린 적도 있었다.


위조 성과는 대단했다.


같은 이별연기를 하더라도 예전의 이별 기억을 되살린 것이냐며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랑을 한 거냐며 소름 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쩐지 너는 깊은 연애를 많이 해봤을 거 같다며, 눈만 봐도 딱 느껴진다는 반응들.

그럴 때 나는 그저 묘하고 알듯 말듯한 웃음만 날렸을 뿐이다.

나의 이 뻔뻔한 구라는 대담하게도 계속되었고,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곤 공식적으로 나는 연애하는 사람 혹은 적어도 연애를 해 본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차라리 그 편이 편했다.

남자 친구가 없으면 왜 없느냐, 얼마나 되었느냐, 소개받지 않겠느냐,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느냐, 눈이 높다, 배우가 연애를 쉬면 안된다 등의 온갖 시달림을 겪느니 남자 친구가 있다는 대답이 일반적인 과정을 밟는 일반적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물론 내가 비일반적이란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모태솔로들이여 모밍아웃하라! ... 는 모르겠다)


그 위조 결과의 정착지는 베드신이었다.

그리스의  고전 비극을 재해석한 실험 연극의 주연으로 뽑혔는데, 베드신이 포함이었다.

더군다나 루마니아 연극제에서 보여질 작품이라,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어 국경을 초월하는 공감이 필요한 장면이었다. 나는 상복을 입은 죽은 안티고네였고, 그녀를 그리워하던 하이몬의 상상 속 만남이었기 때문에

그로테스크하면서 슬프지만, 결국 그 행위예술에는 명백한 성행위를 뜻하는 동작들이 있었다.

물론 노출도 전혀 없었고, 나는 무대위에서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입술이 아예 닿지도 않는 행위예술 표현이었지만, 문제는 그 행동. 안무와 다름 없는 그 액팅이 문제였다.

엄마가 내 배 위에 손을 올려놓고 엄마손만 해줘도 자지러지게 웃던 내가 타인의 손가락이 허리에 닿을 때 그 웃음을 참을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이 창피하다거나 걱정된다는건 전혀 없었다.

그저 내가 모태솔로인 게 티가 날까 봐 걱정됐을 뿐.

그게 티가 날 정도로 내가 연기를 못했다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죽어라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괴상한 변명따위는 하고싶지 않았고, 나는 프로배우고, 결국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가이니까.



-지랄들 하고 앉아있네.



연출님이 헐떡임 가득한 연습 속에서 한 문장으로 우리를 사뿐히 즈려밟았다.

나와 상대 배우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 순간 나는 베드신을 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 여성으로서 모멸감보다는

내가 배우로서 저 말을 들을 정도로 똥연기를 했는가 밖에 신경이 안 쓰였다.


연출님은 한 템포 쉬더니 여전히 공격적인 디렉팅을 이어갔다.



-언니 괜찮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후배 k가 지하철에서 물었다.


-응 괜찮아.

-그래도요. 솔직히 딱 그렇게 베드신 중인데 그 순간에 지랄들 하고 있다는 건 좀 그랬어요.

저라면 울었을 텐데.


-아냐 괜찮아. 정말 지랄들 했나 보지 뭐.

-아뇨 그래도..

-자연재해 같은 거야 이런 건.

-네?


-내가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거지 저런 건.

왜 비가 오고 난리야? 왜 태풍이 오고 난리야? 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을 잡아먹기보다는,

아 비가 온다. 태풍이 온다. 집 어딘가를 고정해야겠다.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야겠다 같은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을 하다 보면 사실 비가 오던 태풍이 오던 중요하지 않게 돼버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더 튼튼한 집을 만들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지.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튼튼한 집을 가졌어봐.

그럼 비가 오는구나 태풍이 오는구나 했겠지?


그러니까 어느 쪽이든, 그냥 자연재해 같은 거고, 흘려보내는 거고, 나는 나를 위한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랄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연출님은 분명 연기적인 부분만을 짚어내 지랄이라는 단어를 쓴 게 아닐 것이다.

나중에 건너 듣기로 연출님은 상대배우와 내가 이미 잤고, 몰래 교제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게 지랄이라고 느껴질 정도라면 성스러운 연습실에서 둘이 노닥거리는 것처럼 보여 꼴 보기 싫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태풍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어서 내 할일을 해야하니까. 그것도 탁월하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야동을 켠다.

그 속에 나오는 av배우들의 끈적한 행동들과 소리를 학습한다.

상대배우의 등을 쓰다듬는 내 손길에 아무 감정이 없다는 피드백은 확실했다. 근데 도저히 끈적한 손길이란게 뭐야 대체?


살인을 해야만 살인자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들의 힘이 자꾸 작아지고 있었다.

읏 읏읏-

내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소리들이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밤.

아니 내가 왜 할 수 있다고 했지? 이 멍청아.

멍청한 초인은 베개를 끈적하게 쓰다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상대배우와 연습을 마치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참고로 그에게는 내 사정을 모두 말하고, 혹시 내가 이상하게 하면 말해달라고 부탁해놓은 참이었다. 그는 어쩐지 내가 행동하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


-넌 나랑 할 때 무슨 생각해?

-응?

-그 씬일 때 말이야, 우리 리듬타면서 움직일 때 너가 날 쳐다보잖아. 그때 무슨 생각해?

-음...널 갖고 있다..?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



-.....그.. 너가 날 보는 눈빛이...그..날 죽이려는 킬러 같아...



......




아무래도 야동을 바꿔야 할 것 같다.






-2018년 어느날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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