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친한 동생과 공주 마곡사로 템플스테이를 가기로 했다.
우리 둘 다 종교는 없었지만, 우연히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찾아온 한 스님과 인연이 닿았고
그 스님이 공주 마곡사로 와서 자신을 찾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스님의 연락처도 모르고 오직 이름만으로 찾아가는 재밌는 여정이기에
우리는 출발 전날까지 설렘을 나누며 다음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이런 니미 씨뻘.
앞으로 펼쳐질 템플스테이 속의 경건함을 잔뜩 기대하며 탄 택시에서 들은 첫마디였다.
출발 시점부터 택시기사님은 유난히 날이 서 있었는데, 나 때문에 화가 나 있다기보다는 운전하는 내내 옆 차에 대한 욕설과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조수미의 아베마리아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세상을 정화해보려 노력해봤지만, 그 사이로 너무나도 날카로운 쌍시옷들이 명확하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반복되는 송곳같은 말들이 혹시 나한테 불만이 있는건가 라는 위험한 생각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템플스테이를 가는 날의 아침 시간을 이렇게 망치고 싶지 않아 찜찜하던 중 최후의 보루로 챙겨온 가방 속 초콜릿이 생각났다.
지금 내가 이걸 먹으면 기분이 급속도로 좋아질거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보다 더 기분이 좋아질, 놀라울 방법이 떠올랐다.
-기사님, 이거 드세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여기서 내리라는 날카로운 기사님께 초콜릿을 건네며 드시라고 하니
갑자기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시더니 얼굴까지 벌겋게 되셔서 간신히 말씀하셨다.
-안.. 줘두 되는데...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하니 멋쩍은 목소리로 좋은 하루 보내라고 덩달아 들뜨게 웃으시던,
그 순식간에 변한 눈동자가 너무나 생경했다.
그 작은 초콜릿 하나로 기사님이 힘을 낼 수 있어 기쁘고, 그 후에 다른 승객들도 편안히 갈 수 있어 기쁘고,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하루를 선물 해서 기쁘고, 그래서 결국엔 내가 기뻐지려고 한 –
다분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기쁜 선택이었다.
미운 놈 떡하나 주기 라는 옛말이 있듯이, 그 미운놈에게 떡을 주면 미안한 놈이 되는걸 우리는 살면서 종종 보게 된다. 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더 잘해줘야 한다라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살면서 우리의 귀에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많은 말이 들린다.
그런데 그 들리는 첫마디는 선택할 수 없을지라도 두 번째와 세 번째 말들은 내 반응으로 어느 정도 선택할 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말들조차도 귀담아듣지 않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고.
들리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귀담아 들을지 말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깨달음으로 시작한 4시간 동안의 버스 여정을 끝으로 마곡사에 무사히 도착했고, 기대를 안고 간 절에서는 그런 이름의 스님은 이곳에 계신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과거에도 그런 스님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만나 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허무해서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우리는 또 한 번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 스님은 존재하지않아 허무하게 시간을 낭비했다”에서 “그 분 덕분에 이곳을 오게 되었다.” 로.
그리고 그 선택으로 마곡사에서의 나날들은 완벽에 가깝게 행복했다.
그 후 3년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의 간격을 유지하며 의지하는 취향이 비슷했던 사람이라,
어떠한 서운함이나 구속감없이 명쾌하게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곤 했다.
최근 우리는 행복이 무엇인지, 선택이 무엇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과거를 쉽게 재단하는 말속에서 상처를 받고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무엇인지도.
니미 시벌- 까지는 아니어도 그녀에게도 어떤 말들이 들린다.
작정하고 자신을 공격하려는 말이 아니었다지만 이상하게 되새기면 속상해지는 그런 말들.
나는 그녀가 그녀에게 들린 말들을 잘 깎고 다듬어 꼭 필요한 보석으로 만들어 자신에게 빛나게 꾸밀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들리는 말뿐이 아니다.
내 기분, 내 행복 역시 그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내가 유일하게 조절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내 조건이 미운 놈들이 득실거리고 아베마리아를 망쳐버리는 순간들이어도,
내가 행복해지기로 선택하는 내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진정 나 자신 밖에 없다.
그 이후로도 종종 나는 초콜릿이나 먹을 걸 들고 다닌다.
물론 누굴 주진 않고 거의 내가 먹는다.
솔직히 , 그게 기분은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