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삼킨 말2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은 저마다의 놀라운 관계를 맺고 있겠지만, 우리 집이라고 다를 건 없다.
연기를 시작했을 무렵, 전화기 너머 언제나 들리는 건 엄마의 울음섞인 부탁..을 빙자한 협박이었다.
연기를 그만두기를 종용하는 그녀의 눈물.
당시 미디어에선 이 업계의 어두운 면들이 많이 보여지고 있던 터이고, 워낙 보수적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심심치 않은 엄마의 반대에 매일 매일 힘에 부쳤었다.
그날도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찬 엄마의 부정적인 뉘앙스에 지친 나는 전화를 끊고
장문의 문자로 엄마에게 메세지를 남긴 후 잠수 아닌 잠수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가 저렇게 유안진 시인의 시를 보냈다.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있다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남이 터트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계란을 생각하며 , 유안진>
어렸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그녀는 정말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아니 지금 보니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 아니라 그냥 딸을 사랑해서 져준 것일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사과를 끝으로 그리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동화같은 마무리면 좋겠지만,
엄마와 나는 마치 뫼비우스띠처럼, 절대 부서지지 않는 창과 방패처럼 끊임없이 반복했다.
TV에 조금씩 내가 나오면서부터 엄마는 누그러졌지만, 마음 한켠에 딸에 대한 부정은 분명했고
그건 우리의 무의식적인 대화에도 불현듯 튀어나오기 일수여서 휴전이라곤 좀처럼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나보고 독하고 강하다고 했고, 나는 어렸을 때처럼 여린 엄마를 달래야만 했다.
짱구는 못말려를 보다가도 우는 울보 엄마. 내가 걱정되서 우는 엄마.
수학여행날 아파서 우는 엄마. 아빠한테 서운해서 내 품에 안겨 우는 엄마.
이소라의 별을 들려주면 우는 엄마.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좋다고 하면 벅차서 우는 엄마.
내가 연기를 하더니 변했다며 우는 엄마. 나를 지켜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우는 엄마.
사실 나는.
잠깐 들숨날숨만 잘못쉬어도 떨어질 것 같은 벼랑에 새끼손가락으로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순간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의로 매달린 것도 아니고 억지로 매달려서.
지나가는 독수리가 내 손톱이라도 파먹어줘서 그 덕분에 그대로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어둠만이 드리운 긴 터널.
순간이라기엔 그래도 꽤나 버티기 힘든 영겁의 시간이었고,
그 순간들을 좌심방 우심실에 억지로 우겨넣다가 겨우 가족들에게 고백을 했었다.
누구보다 독하고 강하고, 똑소리나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딸의 고백에 엄마는 또 울었다.
나의 저주와도 같은 고백은 한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재앙같은 굉음이었을텐데,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든 연주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것도 음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너는, 우리는, 가능하다고. 끝내주는 협주곡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초인아 해방일지 봤니?
-아 유명하더라 요즘. 근데 안봤어요
-아니 있지 그거 박해영 작가가 쓴거거든? 그 있잖아 나의 아저씨 쓴 사람. 근데 그 작가 대단하다?
글쎄 추앙이라는 말을 써 너 추앙 아니? 추앙해라는 말?
-아....잘 안 쓰는 단언데. 특별한 단어를 잘 쓰셨네
-거기서 구씨라고 있어 맨날 술만마시는 남자거든? 근데 배우 김지원이 알지? 그 태양의 후예 김지원이.
김지원이가 구씨한테 가서 자기를 추앙하라고 그러더라? 사랑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자기를 추앙하라고.한번도 채워진 적 없다고.
-.....그랬구나. 멋있는 말이네.
-그러니까 말이야. 아니 어떻게 추앙해라는 말을 생각해냈을까 그지? 어쩜 그런 단어를 우리가 놓치고 살았을까 그지?
-..그러게.
-...우리 딸 엄마가 추앙해.
아무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엄마가 우리 딸 정말 추앙해. 사랑만으론 부족해 추앙해. 엄마가 계속 추앙할거야.
엄마가 늦게 말해서 미안해.
전화를 끊고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환희의 눈물이 이런건가 싶었다.
나를 추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깊은 마음속 해변 언저리에 황금빛이 출렁이고 또 출렁인다.
가족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추앙해주었다.
어느 날 그 추앙들을 눈치챘을 땐, 나는 벼랑에 새끼손가락으로 매달려있지 않았고,
그저 두 발로 벼랑을 딛고 서있었다. 신발도 튼튼하고 절벽도 1m 앞에 있어 꽤나 괜찮은 기분.
그리고 어느날엔가는 벼랑이 아닌 별들이 쏟아지는 협곡이었다가
검은 비 쏟아지는 들판이었다가 결국엔 따뜻한 침대에서 꼼지락 대는 나를 발견했다.
마법같은 일이었다.
그 메커니즘을 이길 수 있는 것도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결코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다시 그 어둠을 맞닥뜨려도 내가 한번 이겨봤으니까. 시간이 걸려도 더는 무섭지 않다.
엄마는 그녀가 10년전 보냈던 시처럼, 내가 나를 헤아릴 수 있고 내가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들을 존중해주었다. 긴 무명생활 동안 나를 믿어주었고, 응원해주었다.
덕분에 알을 깨고 병아리가 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이 시를 답문으로 보내고 싶다.
바사삭.
알 깨지는소리.
내 알은 콩알만해서
소리도 바사삭-한 것이 누가 들으면 낙엽인지 봉지인지 덴뿌라인지 알 수 없겠지만
실로 그 콩알 자신에게는 굉장한 굉음이었지말입니다.
온 몸이 부서지는 소리였으니.
바사삭.
<바사삭 , 김초인>
그리고 이 병아리가 닭이 될지, 치킨이 될지, 그건 아마 지켜봐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