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뱉은 말
딸바보.라는 말이 유행했던게 아마 10년전즘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땐, 딸 바보라는 말은 없었지만 전국구에 아니 지구상에 딸바보는 굉장히 많아보였다. 우리 아빠 빼고.
다른 아빠들이 우리 공주, 우리 귀염둥이라고 불렀을 경우 우리 아빤 야.
아니 이름조차 안부르는 편이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태어나기를 애교를 부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저런 무뚝뚝한 아빠에 대한 오기때문인지 몰라도 어렸을 때 부터 애교가 상당했는데, 내 기억속의 아빠는 초등학생인 나에게도 굉장히 매섭고 매정하고 매몰찼다. 쌈에 고기를 싸서 입으로 넣어주려 하면 "나도 손있어." 라고 하거나 볼에 뽀뽀를 하려고 하면 "양치안했지?" 라고 하는 냉혈인.
무엇이 그를 그렇게 무뚝뚝하게 만들었을까.
훗날 엄마로부터 들은 것은 아빠는 그렇게 아빠의 아빠한테 배워서 자기도 응당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말로서 넘치는 사랑표현보다는 도시락을 싸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자라, 아빠도 그저 행동으로서 사랑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났고, 나 또한 그렇게 자라야한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백건데. 아빠가 출근전 내 교복을 매일아침마다 다려주고, 내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한참 울다 잠들고 나면 책상위에 신상 아이리버 mp3가 선물로 놓여져있어도, 술먹다 들어와서 잠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 미워하지마." 라고 말했을 때에도.
그가 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사랑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결핍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해 하면 대꾸없던 그는 결국엔 나도 사랑해 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아빠 뽀뽀-하면 볼에 뽀뽀정도는 할 수 있는 스윗가이가 되었으니까.(사실 내 노력때문이라기 보다 그냥 아빠가 나이들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언젠가 어렸을 적 난 엄마아빠랑 평생 살고 싶어 ! 라고 하면 아빠는
아이고. 나중에 늙어서 냄새난다고 싫어하지나 말아라. 하고 슝 사라져버리곤 했다.
중간고사 전교1등을 했을 때 인정받고 싶은 내가 아빠에게 나 대단하지!!! 라고 했을 때, 아빠는 기말고사 등수도 아닌데 뭘 이라고 지나가버리는 염세적인 사람이지만.
내가 결국 기말고사를 망친후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우울해하고있으면, 아빠는 운전을 하며 그래도 우리 딸 정말 대단한거지 과외도 안받고! 라고 해서 날 울려버리는 츤데레.
나는 아직도 차안 백미러로 보이던 어색한 위로를 하는 아빠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그런 내가 아빠를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 넷이서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본 날이었다. 점점 젊어져 마침내 아이가 되는 브래드피트와 점점 늙어가는 케인트블란쳇과의 사랑이야기. 삶과 탄생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
우리 가족은 영화가 너무 좋다며 잠에 들었고 그 다음날, 아빠는 이미 출근한지 오래였는데 엄마가 말을 했다.
-네 아빠 어제 한숨도 못잤대.
-왜?
-영화때문에
-왜?
-아빠는. 너무 충격먹었대.
.....
나는 아빠가 그 영화를 보고 충격을 먹고 밤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당장 아빠에게 뛰어가 아빠를 안아주고 싶었다.
아빠는 죽음에 대한. 늙어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게 분명했다.
그는 이제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어머니. 나의 아픈 할머니를 요양병원에서 수년동안 돌보셨다. 할머니는 그녀의 자식이었다가 아빠였다가 남편이었다가 남이 되기도 하는 그녀의 아들을 매번 찾곤 했고,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식사시간에 맞춰 가 그녀옆에 앉아있었다.
아마 아빠는 사랑했던 어머니가 변해감을 보면서 너무 큰 두려움과 상처를 받았을거라고.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며, 훗날 당신이 낳은 딸 역시 자신을 돌보는 순간이 오는 것을 끔찍히 두려워한 걸거라고.
아빠는 무슨 말만 하면 냄새나서 나중엔 싫어할거잖아. 라고 습관적으로 말했었고, 주름이 보인다면서 웃으면서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볼뽀뽀를 하고 얼굴을 부비는 나에게 네 서방생기면 실컷해라 하고 도망가는 겁쟁이 쫄보.
그 아빠가 밤새 그 영화를 곱씹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날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라는 영화를 예약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날 엄마는 속상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아빠가 화를 내며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 둘이 더 행복하고 아끼면서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한텐 그게 너무 큰 두려움이고 너무나 큰 실재이자 실제였으니까.
내 기준으로만 완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그리고 그 오만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았던 날이었다.
최근에 이장한 산소에 우리가족 넷이 다녀갔다.
-이장할때, 아빠는 봤어?
-무얼?
-무덤 속 할아버지...다른 분들 모습도 봤어?
-응
-어땠어? 그동안 편히 쉬신 것 같았어?
-아니야. 물이 너무 많이 차서 많이 부패되어있었어. 다들 보기 힘들어했어.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아빠는 다 봤어?
-응 다 봤어.
-...아빠 정말 놀랬겠다.
아빠가 대답이 없이 가만히 무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안아줬다.
아빠는 싫다고 뿌리치지않았고. 그저 가만히 내 포옹을 받아들였고. 시간이 지나도 밀어내지 않았다.
나는 순간, 내가 낳아본적도 없는 내가 낳은 아이를 안은 것 같은 이상하고도 깊은 유대감이 들었다.
나는 아빠를 사랑해. 냄새가 나든 안나든. 아빠. 정말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