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할 것을 알지만, 흔하게 격려하는 흔한 문구가 있다.
"피는 계절이 다를 뿐이야"
보통 무언가 결실을 맺거나, 고생 끝에 낙이 오거나,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 값이 잘 나왔을 때 "피었다"라는 문장을 사용한다. 우리는 이 주어를 안다. '꽃'을 '우리네 인생'으로 비유하여 사용한다는 것을. 정말 흔한 격려지만 이만하게 사람의 마음을 적절하게 채울 응원이 없기에 흔히들 건넨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 꽃을 피우기에 애매한 계절에 서 있었다. 내 인생의 좌표가 피기도 전에 피지 않기로 결심하고 엎었던 때가 여러 번 있었던 까닭이었다. 나의 꽃이 어떠한 계절에 피울지, 혹은 틔울 수나 있을지에 대한 가늠조차 되지 않았던 혼잡스러운 때. 그렇게, 나는 늘 불확실성에 대한 연속선상을 걸어가야만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묵묵히, 양분을 쏟아내며. 언젠가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피겠지'라고 희망고문하며.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인생의 이슈를 만나건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도전하는 내가 지겨워졌다. 이제 맨몸으로 땅의 결을 파악하기보다 멀찍이서 저 땅이 내가 누울 자리인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이는 내가 상담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들었었다. 사람은 안정감이 들 때, 그것을 깨고 싶지 않아 한다.
그때 결혼이라는 글자가 내 인생의 이슈로써 다가왔다. 진로라는 삶의 과제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언젠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할 거야, 피는 때가 있어 등등의 격려를 지나가듯 듣기를 n연차, 드디어 피는 때가 다가왔을까 생각했지만 내 마음은 안전지대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했다. 미디어에 너도 나도 사용했던 "시월드"라는 단어의 편견 때문이었다. 괜한 단서를 찾아내고자 레이더망을 곧게 세웠다. 굳이 단서가 없음에도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곧추 세운 마음으로 준비를 하던 과정에 꼭, 지나가야 하는 '상견례'의 퀘스트가 다가왔다. 나는 꽃을 잘 피우기 위한 방법들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 속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중적인 언어가 있는지에 대해 파악을 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결혼 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과정이라 치부하였지만, 이것은 아주 큰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머님에게 꽃을 받은 순간에.
어머님은 나에게 드라이플라워를 한 아름 안겨주셨다. 당신은 상견례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시험대라고 생각하시기보다, 새롭게 가족으로 함께하게 될 며느리를 보셨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준비 못한 나의 손이 참으로 초라했다. 그때 처음으로 결혼 준비에서, 나의 마음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찾아왔다. 그것은 내가 당신들을 나의 새로운 가족인 어머님과 아버님으로 보지 않고 나의 편의를 위해 시험대에 오르게 한 값이었으리라.
그 뒤로도 어머님은 종종 나를 위해 꽃을 사다 주셨다.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혹은 누군가에게 꽃을 사주려다가 예쁜 며느리가 생각나서. 그 이후로 꽃은 나에게 "피기 위한 존재"에 대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피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녹여주는 무언가로 다가왔다. 지금도 집 책장에 처음으로 주셨던, 강아지 풀과 곱게 말려진 안개꽃이 가득한 그 꽃을 볼 때면 긴장된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상견례 때의 그 감정처럼.
나는 여전히 꽃이 좋은 양분에서 피어지길 기대하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집 책장 한편에 놓인 그날의 꽃을 볼 때면, 나는 아직도 조금씩 마음이 풀린다. 피는 것보다 먼저 도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