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낭만화, 혐오의 일상화

여성학 교양수업 강의 리뷰 - 여성 혐오, 성폭력의 낭만화

by 유미 최 사카모토

시험이 끝난 뒤 첫 강의에서는 일상 속 녹아든 여성 혐오와 성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봤다. “여성 혐오”라는 단어의 강한 어감 때문에 여성 혐오 표현이 폭력적인 방식으로만 나타날 것 같지만, 사실 여성 혐오는 호의나 배려의 형태로 자주 나타나며 그 위험성에 대해 짚어 주셨다. 흔히 여성을 보호의 대상 혹은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 예시다.

꽃뱀 프레임은 유혹하는 사람(즉 여성)을 악으로, 유혹당하는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면서 피해자의 가해자화, 가해자의 피해자화를 동시에 일으키는 폭력적 구조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No means No rule 은 비동의 간음죄를 뜻하며, 권력관계로 인해 강한 저항이 어려울 경우 유용하게 작동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Yes means Yes rule의 개념도 제시되었는데, 이는 No means No rule 보다 성적 동의 범위를 좁게 잡은 개념임을 알 수 있었다. 조별 토론 시간에 두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부 의사조차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경우 Yes means Yes의 유용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동의’라는 기준의 모호함에서 한계가 존재한다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될 당시의 일을 뚜렷이 기억하는데, 일부 페미니즘 진영에서 탈코르셋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비난과, 기존 남성 사회 및 성 역할을 옹호하는 여성을 깎아내리는 ‘흉내 자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이 일상의 민주주의가 실천되는 과정의 일부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명확한 정답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페미니즘이 사회악처럼 분류되는 사회에 살았다(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확산이 없었다면, 현재까지도 개별화된 성폭력 경험의 발화나 공동의 대응과 해결을 호소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갈등 발생 상황이 마냥 두렵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러한 논쟁의 시작이 변화의 신호탄으로써 조금 반갑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강의 중 한국에서 1988년까지만 해도 성폭행을 결혼으로 해결하는 문화, 강간범이 피해자와 결혼하면 무죄가 되는 상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안 그래도 최근 글방 동료의 글에서, 부모님 세대 중 집요한 스토킹과 협박으로 인해 결혼하게 된 사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바 있었다. 아마 비슷한 1980~90년대에 해당되는 일 같다. 연예계에서도 납치, 강간으로 결혼한 경우가 존재했다고 알고 있다. 이런 정보를 접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실감하게 된다. 한국 안에서 듣고 보고 자랐기에 한국의 국제적 지위라든지 시민 의식 수준을 제삼자의 눈으로 볼 기회가 없었는데, 새삼스럽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한계와 어려움을 느낀다.

국가 간 위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한국은 미군 범죄나 일본 위안부 문제 등 국가적 성폭력 사례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베트남 전쟁 등에서는 성폭력을 자행하는 가해자이기도 했다. 최근 다른 교양 강의에서 남정현의 「분지」라는 작품을 다루었는데, 해당 소설에서 미군이 한국 여성에게 행하는 성폭력에 분노한 주인공 한국인 남성이 미군의 아내(미국인)에게 성폭력을 행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한국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해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던 미군과, 미국 여성의 몸을 침범하려 시도하다 폭격당할 위기에 처한 주인공의 상황이 대비되어 나타나는데, 이 작품에서 국가 간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물론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문학사적 표현 방식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분지가 1965년에 발표되었다는 점, 또한 미군 범죄의 사례로 대표되는 1992년 윤금이 씨 사건 발생 당시 “우리도 미국 여자를 강간하자”는 구호가 집회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국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스스로 성욕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통념이 남자가 자기 절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 용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새삼스럽게 충격적이었다. 해당 개념은 내 안에도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섹스 상황에서 나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원치 않는 기색을 내비치면 성적인 행위를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멈춰야 한다고 믿는 데 반해, 상대 남성의 경우 내가 매우 강력하게 거부하지 않는 이상 소극적인 거절을 암묵적 동의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작 10년도 채 되지 않은 국정 성교육 표준안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여자에게 긴 바지 차림이 안전하다는 둥 여성만을 억압・통제하고 성폭력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는 교육을 하는지・・・・・・. 나의 경우 유아기 때 “안 돼요,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 교육을 받은 세대다. 유치원에서 해당 교육을 받고 혼자 심부름 가던 날, 골목길에서 모르는 남성이 접근해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봉고차 트렁크 쪽으로 유인한 적이 있다. 차량 근처에 다다르자 그는 나를 등진 채 바지 앞섶에 손을 넣어 무언가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과, 당일 유치원에서 배운 “안 돼요,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는 이 상황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몇 초간 얼어있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전속력으로 뛰어 골목을 빠져나왔다. 사람이 보이는 큰 길가까지 나와서 남자가 따라오지 않는 걸 확인한 나는 침착하게 식용유를 구매한 뒤 큰길을 따라 집에 돌아갔다.


사회의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과 성관계를 제안하는 말이 명확화 되어야 한다는 강의 내용에 공감이 갔다. 나의 경우에도 섹스 상황에서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해 원치 않는 관계를 맺은 경우가 많았다. ‘여성은 무드에 약하다’는 식의 교육은 성관계를 제안하는 명확한 언어를 주고받지 않고서도 분위기만으로 여성을 통제하고 성적으로 착취할 수 있다는 말을 함의한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언어의 탈신화화, 탈낭만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성폭력의 낭만화는 드라마나 노래 가사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불과 10년 전 드라마만 보더라도 엄연한 폭력 행위가 로맨스로 포장됐던 걸 확인할 수 있듯,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여성에게 보다 안전한 방향으로 향하리라고 믿는다.


조별 토론 시간에 인간의 3대 욕구 중 “배설욕”이 “성욕”으로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남성 중심 문화에서 만들어져 남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유통되는 성적 암호와 은어’로써 다른 조 학우가 제시해 준 “야메떼”의 예시가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본래 거부 의사를 밝히는 단어가 오히려 동조의 의미로 해석되고, 단어가 오염되며, 일본어라는 언어 자체를 민망하게 만든다는 부분에서 깊이 공감됐다. 그 외에도 우리 조에서는 보딩고지, 오우야, 눈나, ~좌, 패왕색, 맛있다, 외식 등 많은 단어를 찾았다.

이번 시간에 나도 모르게 내면화했던 성적 편향과 여성 혐오를 발견할 수 있었고, Yes means Yes rule 등 새로운 개념을 배웠다. 해당 개념의 사례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아보고 싶어졌다. 또한 성적 암호와 은어가 여성에게도 전파되고 사회 전체의 암묵적 합의로 고착화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사람의 여성이자 자칭 페미니스트로서, 단지 ‘지식’을 넘어 나의 언어, 관계, 태도를 바꾸려는 실천의 필요성과 책임을 느낀다.




2025.5.2.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여성학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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