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집에는 곰팡이 꽃이 피어

by 유미 최 사카모토

현관을 지날 때마다 하수 썩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했지만, 현관을 지나칠 때마다 참았던 숨을 슬쩍 코로 들이쉬며 오늘도 그 냄새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했다. 들숨을 타고 비강 안쪽, 뇌까지 움찔하게 만드는 익숙한 악취.

그것은 아마도 부패한 유기물에서 발생한 황화수소 가스 냄새.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비슷한 악취에 대한 기억이 소환된다. 그 냄새에 대한 첫 기억은 이렇다. 지금은 재개발된 개포동의 10평짜리 주공아파트 4단지에 살 때, 초등학교에서 방학 때마다 “생명을 키우는 감각을 기르라”며 플라스틱 통에 개구리알을 잔뜩 담아 줬다. 먹이도 챙겨 줬던가. 아무튼 개구리가 될 때까지 잘 키워보라고 했다. 개구리알이 올챙이로 부화하는 데는 대부분 성공했던 것 같은데, 올챙이가 자라 엄지손톱만 한 작은 개구리가 되는 동안에는 살아남는 개체보다 죽는 개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뒷다리나 앞다리가 돋아나는 중인 올챙이가 죽으면, 그 플라스틱 통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보광동 반지하 집의 하수구가 막힌 날 이후로 현관문을 지날 때마다 옆에 난 하수 구멍에서 바로 그 냄새가 났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 안에서, 물에 잠긴 올챙이 시체가 썩을 때 나던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살리라고 준 건지 죽이라고 준 건지 알 수 없는 개구리알을 방학 때마다 잔뜩 받아와, 그들이 죽어갈 때마다 맡았던 냄새. 살아남은 한두 마리의 개구리에게는 더 이상 적절한 먹이를 챙겨 줄 수 없었으므로 한강에 풀어줬다. 갑작스레 던져진 광활한 자연에서 그들은 과연 며칠이나 살아남았을까?


“윗집 여자가 아무래도 이상해.”


엄마는 타인에 대해 다소 함부로 추측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윗집 여자의 남편이 주차하다가 깨 먹은 우리 집 창문 수리비를 요구하러 윗집에 방문했을 때, 나는 어쩌면 이번에는 엄마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유가 타당하든 어쨌든 금전을 요구하는 문제를 논할 때 기가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고등학생 티를 아직 못 벗었던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어디선가 선물 받고 박아두었던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쨍한 다홍색 코트를 꺼내 입었다. 까만 아이라인을 두껍고 길게 그리고, 가슴에 휴지까지 채워 넣은 뒤 잘 걷지도 못하는 높은 구두를 또각거리며 계단을 올라 윗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아랫집인데요.”


여자가 현관문을 열었다. 오며 가며 가끔 마주친 걸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첫 대면이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여자는 나를 매우 경계하고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나는 덩달아 잔뜩 긴장했다. 그걸 감추기 위해, 스스로 약간 뻔뻔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태연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다름 아니라 남편분이 저희 집 창문을 깨셨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흥분한 여자가 돌연 버럭 소리 지르고는 황급히 문을 닫으려고 했다. 어라, 이상하다. 아직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당황한 나는 구둣발을 현관문 틈새에 밀어 넣고 대화를 시도했으나, 여자는 거의 이성을 잃고 “꺼져 미친년아” 라는 둥 욕설을 뱉으며 기어이 문을 닫아 버렸다.


“남편분이 주차하시다가 저희 집 창문 깼다고요! 그거 수리비 때문에 온 거예요.”


닫힌 문 너머 헐떡이는 숨소리가 차츰 잦아드는 듯했으나, 다시 문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전화번호와 계좌번호를 적은 포스트잇을 현관문에 붙여놓고 돌아섰다.


허. 내가 대체 왜 미친년 소리를 들어야 하지? 곱씹을수록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필사적으로 윗집 여자의 태도를 이해해보려 애쓴 끝에, 여자가 나를 당신 남편의 내연 관계 쯤으로 오해한 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내가 조금은 오해받을 만한 몰골이었지 않을까 싶어 뒤늦게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날 다른 일정으로 버스에 탔을 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청소년 요금으로 찍힌 카드의 ‘삐빅’ 소리에 버스 기사가 내게 청소년이 맞냐고 물었다. 다행히 창문 수리비는 얼마 뒤 입금 되었다.


내 생각에 윗집 여자는 엄마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이 자신을 위협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날을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며 세계를 재해석하는 모습. 그러한 해석을 어느 시점부터 왜곡이고 ‘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내 안에서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청량리 모 병원은 엄마를 조현병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엄마와 윗집 여자의, 어떤 경계 태세랄까 하는 것들이 내게는 다소 겹쳐 보였다. 어쨌든 엄마는 그런 방식으로 반지하 집 하수구가 막힌 건 윗집의 고의라고 말했다.


“이것 봐! 싱크대가 역류해서 고춧가루가 잔뜩 나온다. 윗집에서 일부러 그런 거야.”


엄마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분노하며 말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뭐랄까, 무서웠다. 저 화살이 나를 향했던 기억이 축적된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엄마의 세상 속 엄마를 위협하는 수많은 것 중에는 가끔 내가 속하기도 했으므로 나는 종종 엄마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반지하 집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어 여름에 에어컨도 틀지 못했다. 덜 마른 빨래가 항상 널려 있는 손바닥만 한 발코니가 붙어있었던 내 방은 유독 습하고 곰팡이가 심했다. 그 방은 원래 창고로 쓰이던 공간이었으나, 수험생이 된 내가 언니와 함께 쓰는 방이 아닌 독립된 방을 요구하면서 내 방이 되었다. 엄마는 빨래를 널거나 개기 위해 불투명한 유리로 된 내 방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와 발코니로 횡단했다. 그 외에는 내가 새벽 다섯 시까지 불을 켜고 있어도, 학교에서 돌아와도,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방을 벗어나기 전까지 나는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비염,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살았다.

한 번은 윗집(또 윗집이다) 수도가 누수 되어 부엌 쪽 천장과 벽을 타고 물이 흐른 적이 있다. 엄마가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윗집이 또 해코지 한다며 통탄했고 내가 움츠러들었을 때쯤,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누수 사실을 인지한 윗집 여자의 남편이 찾아와 최대한 빨리 해결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물이 새는 건 금세 멈췄지만, 벽지에는 젖은 모양 그대로 곰팡이가 피었다.


그러니까 별로 잘 생기지도 않고 뚱뚱하기까지 한, 일곱 살 많은 성인 남자를 미성년자인 내가 사귀었던 건 그의 자취방으로 도망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사다 주는 피임약을 먹고 그의 집에서 섹스했다. 길쭉한 막대기 같은 음경이 뱃속을 휘저으면 내장이 이쪽저쪽으로 쏠리는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포르노에서 보고 배운 대로 움직임에 맞춰 나름 그럴싸한 소리를 냈다. 얼마 뒤 우편함인가에 “사랑 나누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쪽지가 붙었다.

그에게서는 늘 담배 냄새가 났다. 키스할 때는 담배 냄새 때문에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그의 집에서 자는 일이 많아졌다. 피임약 때문에 속이 늘 더부룩했고 가슴이 아렸으며 살이 쪘다.


그와 만나는 중에 허리디스크에 걸려 시술을 받게 되었다. 미성년자였으므로 보호자인 엄마와 함께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병원에 가던 중, 가벼운 실신 증상으로 길에서 쓰러졌다. 누워있던 내 시야에는 정신과 약물 부작용의 일환으로 불규칙하게 구르는 엄마의 발이 보였다. 서서히 시선을 올렸다.


"일어나."


엄마가 건조한 얼굴로 말했다.


의사가 한동안 안정을 취하라고 했는데, 퇴원하고 며칠 뒤 나는 곧바로 남자친구의 집에 가서 그와 섹스했다. 후배위를 한 뒤에는 특히 허리가 아팠다. 비싼 돈 주고서 받은 시술이 고작 섹스 때문에 물거품이 되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나를 원하는 그와 섹스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나를 원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 나에게는 그런 집이 필요했다.

그러나 비위가 아주 좋지는 못했는지, 그가 술을 마시고 노상 방뇨하는 사진을 본 다음 날 나는 그에게 이별 통보를 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와 말싸움하던 끝에 나는 “대줘서 고맙고 잘 대주고 다녀라”는 말을 들었다. 석 달 짜리 임시의 집은 그렇게 끝났다.


지금 나는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청년주택 원룸에 월세 십만 원을 주고 산다. 관리비를 다 합쳐도 한 달에 삼십만 원 정도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곰팡이라곤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이곳에 산 지도 오 년이 되어간다.

지금 집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엄마가 없다. 나를 원하거나 필요로 하거나 내 귀가를 기다리는 사람 역시 없다. 나는 종종 혼자만의 작은 집에서 길을 잃는다. 나는 자유롭게 고립되고 말았다.

혼자 사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때는 신변의 위협을 받거나 아픈 순간이다. 종강한 뒤 감기에 심하게 걸려 일주일 정도 크게 앓았다. 밥을 챙겨 먹을 힘이 없어 안 먹다 보니 저혈당이 와서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밥을 왜 먹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도 아리송해졌다.


집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는 개도 좋아하는데. 과거 함께 살았던 개들 역시 대개 나를 좋아해 줬다. 돌보아야 할 존재가 있으면 없던 힘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주택에서는 원칙적으로 반려동물을 데리고 살 수 없다. 그런 원칙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개를 부양할 정도의 돈과 시간은 없다.

그렇다면 뱀을 기르면 어떨까? 뱀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는 집을 자주 비우는 사람이 기르기에 비교적 괜찮다던데. 무더운 여름철이면 뱀을 시원하게 목에 감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인터넷으로 뱀 분양가 따위를 알아보다가, 냉동 쥐를 먹이로 줘야 한다는 말에 곧바로 포기했다.


그런데 종강한 지 삼 주가량 지난 여태까지도 잔기침이 나고 가래가 끓는다. 어쩐지 자도 자도 피곤한 것 같고, 잠자리에 누우면 숨이 얕아지고 콧물이 난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이래 이런 일은 없었는데. 몇 달간 미뤘던 이불 빨래를 마친 뒤에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빈티지 숍에서 대량 구매한 옷가지를 제대로 세탁하지도 않고 행거에 빼곡하게 걸어 둔 탓인 것 같다.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옷을 많이 산 내가 잘못한 걸까? 물건은 나를 밀어내지 않고 판단하지도 않으며, 웬만하면 죽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주는데. 그래서인지 혼자 살면서 짐이 많이 늘었다. 책과 옷가지, 그리고 몸에 감을 수 있는 액세서리가 좋아. 요즘은 잘 때도 귀걸이와 반지와 손목시계를 차고 잔다.


그럼에도, 나를 더 아프게 할지 모를 사람의 온기가 닿는 집을 자꾸만 상상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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