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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수 Aug 06. 2024

멈춰있는 시간들

제주도 여행일정이 계획되었던 날들이다. 숙박 예약과 항공예약은 남편의 병환을 알리고 모두 취소했다. 병원에 있는 시간은 여행계획이 있던 시간이라 아무런 급한 일이 없었다. 어차피 여행 외에는 아무 일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모두들 장기 전이라 생각하라는데 난 장기전에 대비해서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장기전에 대비해 준비된 것이 없는데 모두들 이런 준비를 하면서 살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위문 전화가 온다. 전화가 온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어느 땐 받기 싫을 때도 있고, 어느 땐 전화가 안 와서 슬프고 외로운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무디어지고 모두에게 잊혀가겠지.


그렇게 바삐 울리던 남편의 핸드폰이 전혀 울리지 않는다. 매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회사는 마비 상태이고 당장 납품할 것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발을 동동 굴리는 대표의 얼굴은 환자가 차도를 보이자 회사일에만 급급한 듯 보였다. 남편이 3월은 무지 바쁘다고 한 말이 이런 것들 때문인가 보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급여가 작아 대졸 직원이 오지도 않아 후진도 키우지 않았고, 노예처럼 시간 구애 없이 뼈 빠지게 일한 남편 덕분에 시급성을 못 느낀 회사 탓이다. 그리고 남편이 하던 일은 일순간에 터득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바보... 자기 몸 값을 이렇게 낫게 측정하다니! 어쨌든 이번일을 계기로 쉬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일만 뼈 빠지게 하던 남편 덕에 회사 법인카트로 식사를 하라는데 그것도 못하는 이렇게나 소심덩어리인 나!~~ 둘 다 똑같다. 부창부수. 누가 누구를 뭐랄 것도 없다.


남편이 입원한 지 나흘째다. 딸이 미국에서 온다 해서 집을 정리하러 다녀왔다. 남편이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었던 내 여행 큰 트렁크가 어디에 있었는지? 거실 벽장에 넣으려니 안 들어간다.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켰더니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 아빠~~~ 만 부르면 모두 해결되는 것들인데... ㅠㅠㅠ 어쩌지? 하숙생으로만 치부했던 남편은 하숙생이 아니었나 보다. 남편의 빈자리를 어쩌지? 바쁘다고 늘 일찍 출근하고 늦게 들어왔지만 나에 관한 건 모두 해줬던 예쓰맨인데... 나에게만 예쓰맨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 늦은 밤, 토, 일요일에도 늘 혼자 사무실을 지켰겠지.


집안 청소를 하며 무리를 했는지 온몸이 힘이 들었다. 안 그래도 몸살기가 있었는데 더해진 모양이다. 남편덕에 편안히 묵고 있는 숙소가 조용하고 아늑해서 깊은 잠을 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가끔 뒤척이기는 했지만 잘 자고 느지막이 깨어났다. 씻고 또 중환자실로 향했다. 남편을 만날 수는 없지만 지나가는 의사 선생님과 병원 돌아가는 느낌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아침마다 출근했다. 도착해서 남편의 핸드폰에 올라와 있을 새로운 메일이나 문자를 검색해 봤다. 조용했다. 아무런 연락도 없다. 정승댁 개새끼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정승이 죽으면 조문객 발길이 끊긴다는 말이 맞는지 남편 친구들로부터도 전화 한 통이 없다. 나쁜 시키들... 허구한 날 자료 찾아달라! 구조계산 도와달라! 뭐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대더니 말이다. 모든 게 자의든 타이든 멈춰진 시간이었다.  


반대로 내 지인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학교 후배 경아쌤이 다녀갔다. 아들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내고 못 갔었는데 이 부근에 강의가 있어서 잠시 얼굴 보며 점심 사주러 왔단다. 삼계탕을 사줘서 고맙게 먹었다.


불현듯 여행에서 돌아와 자가격리에서 해방되었으니 축하한다며 점심을 같이 먹자며 희경이가 전화했다. 고마웠다. 자가격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남편 얘기를 하니 깜짝 놀란다. 나 만큼이나 맘 아파하고 안타까워했다. 오랜 시간 친구라는 인연의 끈이 나를 위로했다.


시연쌤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수님을 만나려는데 함께 가 달라고 SOS를 친 거란다. ㅠㅠ 나의 오지랖~~ 이젠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 없다. 시간 나는 틈틈이 남편 케어에 힘써야 했다.


윤희쌤이 전화해서 저녁을 사준단다. 남편이 쓰러졌다 하니 단걸음에 달려왔다. 꼭 내가 식사 쿠폰을 저축해 놓은 양 주변 지인들이 고맙다. 나를 위로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인데 이 모든것을 교훈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대전에서 미란이가 달려와서 한참을 함께 울어주고 돌아갔다. 미란이는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25년 정도 누워있는 남편을 케어하다가 보낸 지 몇 년 안 된다. 동병상련이라 내 아픔을 무엇보다 잘 알아줬고, 그녀의 위로는 나를 슬픔과 아픔의 고통에서 헤어나게 했다.


경란이와 영희가 와서 맛있는 저녁을 사 주고 갔다. 사실 뭘 먹어도 맛있지는 않았다. 멀리까지 다녀간 친구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남편의 대학동기이자 가까이 지내는 친구 관석 씨가 전화해 왔다. 다행이다. 누구라도 남편에게 연락한 친구가 있어서 고맙다. 지금은 관석 씨 동네로 이사 왔다. 남편의 유일 유십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친구이다.


멈춰있는 시간 속에 하나하나 문이 열리며 시간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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