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자
얼마 전 회사동료 화진이가 알려준 철학관에 갔다. 어차피 호텔에 있어도 할 것도 없고 하루가 너무 길 것 같아 숙소를 나섰다. 멀어서 갈까 말까 고민하던 곳인데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해서 가기로 했다. 교통비와 시간을 들여서 가는데 좋은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다. 어떤 지푸라기라도 지금은 잡고 볼 일이다. 큰 일 없이 이 고비를 넘길 모양이다. 두 군데를 들렀는데 나쁜 소식은 없었다. 지푸라기가 동아줄이 된 기분을 안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혼자 지내는 것도 힘이 든다. 아무런 반응 없는 중환자실 대기 의자를 일주일간 지켰다. 매일 중환자실 복도로 출퇴근하며 서성이는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딱 한번 면회를 했다. 다행히 아무 스케줄도 없는 한 주간이라 맘 편히 중환자실 대기의자를 지킬 수 있었다. 더 이상 면회가 안된다니 중환자실 문 앞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핑계를 댔다. 내 몸도 외로움과 피로에 지쳐 가는 것 같았다. 벌써? 입원실이라도 옮겨져서 쳐다보고 말할 사람이라도 생기면 안 그럴 텐데...... 많은 친구들이 방문해서 밥을 사주고 갔고, 말동무가 되어주고 갔다. 가고 나면 또 허탈해지는 마음... 나도 목 뒤 여기저기가 뻗뻗해지고 몸의 불편이 느껴졌다.
미국에서 딸이 도착해 아빠를 만나겠다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했다. 딸이 저녁식사로 맛있는 고기를 구워주겠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돈다. 그동안의 엄마의 수고를 위로하고 싶었나 보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걱정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학기라 논문과 학교 수업 스케줄 때문에 바쁠걸 뻔히 알면서도 어린 딸에게라도 기대고 싶었다. 남편과는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고 했는데 이런 수발을 내가 먼저 들게 하다니! 맛있는 고기도 나 혼자 먹게 하다니!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요일이라 주치의 선생님과 교수님은 안 오신단다. 간호사에게서 오늘 남편의 상황을 들었다. 출혈을 빼내기 위해 꽂아 놓았던 두 개의 관 중 하나는 며칠 전 뺀 그 상태이고 월요일에 또다시 CT를 찍고 화요일에 출혈부위를 찾는 조형술을 한번 더 하고 입원실로 올라가라는 오더가 있으면 올라갈 거란다. 더 이상의 상태를 물으니 의사권한이라 말할 수 없다며 고지의무를 지킨다. 금요일에 CT를 찍었는데 또 찍냐고 물으니 입원실 올라가기 전 또 찍는 거라고 했다. 남편은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대응을 하고, 물어보면 끄덕끄덕 대답을 한단다. 이런 정도는 내가 지난번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간호사는 내게 남편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 정도의 말에도 안도했다. 지푸라기는 많을수록 좋으니깐.
남편이 쓰러졌던 자세를 회사 직원이 그대로 재연해 줘서 사진을 찍었다. 냉정해지려 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한순간인걸 그걸 붙잡고 영원한 듯 모두 매달려 살고 있겠지? 한 부장님이 남편의 컴퓨터에서 가족들 사진과 자료들을 다운로드하여 줬고, 사무실로 안내해 남편 옷과 신발을 챙겼다. 옆에 동료도 궁금해하며 빨리 완쾌되시길 빌어줬다. 모두가 착했던 내 남편의 건강을 염원해 줬다. 빨리 일어나 나와. 모두들 기다리잖아......
집에 도착해서는 가족의 보험도 살폈고, 버릴 물건들, 딸의 찬거리 등도 챙기고 딸과 함께 밥 먹고 마지막 전철을 타고 돌아왔다. 어느새 이곳도 내 집만큼이나 편안해졌다. 내일은 좋은 소식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