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사과 Sep 26. 2023

0. 겨울의 겨울

내 이름은 윤겨울







나는 겨울이 싫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너는 여름이 좋아 겨울이 좋아? 물으면 답은 언제나 여름이었다. 너는 이름이 겨울인데 겨울 싫어해도 돼? 웃으며 돌아오는 소리엔 나도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지만, 웃을 일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한여름, 더위로 머리가 어질어질할 때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 아, 그래도 겨울보단 나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여의도였다. 콘래드 호텔 앞 여의도 환승센터.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러다 죽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진짜 추웠다. 나는 추위를 잘 타서 학창 시절에도 겨울엔 까만 융 기모 스타킹에 수면 양말을 신고 다녔고, 유니클로 히트텍은 필수였으며 겉옷도 몇 겹씩 껴입고 다녔더랬다. 그때도 분명 바지 안에 기모 스타킹을 신고 패딩점퍼로 몸을 꽁꽁 말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죽을 것 같았다. 죽음 앞에 두려워지는 건 피할 수 없었어서, 버스의 현재 위치, 남은 시간 전광판을 보며 제발 빨리 와주길 울기 직전의 마음으로 바랐었다. 발을 동동거릴 수도 없게 추웠다. 오뚜기마냥 양옆으로 끼익끼익 움직이다가, 정말로 얼어버리기 직전에 버스가 와서 살았다. 겨울이 싫다. 여름엔 벗으면 되는데 겨울엔 껴입어도 춥다. 겨울이 싫어.

그러나 나는 사계절을 살고 있어서, 겨울 또한 살아내야 한다. 살아내다 보면 좋은 일이 찾아오고, 좋은 일이 있어 살아내게끔 한다. 그러니 이렇게 싫은 겨울에도 분명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있다. 빅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것들 말이다. 빅 이벤트도 좋지만 사실 추운 삶을 유지시키는 건 소소한 따뜻함이다. 기억을 긁어가며 그런 소소함을 꺼내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