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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제라늄 Mar 21. 2019

입 안에 반짝이는 보석 하나

치과 담당 선생님은 내 금니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작년에 어금니 하나를 하얀 도자기 재질로 새로 씌워주시면서, 남아있는 두 개의 금니들도 언젠가는 새하얗게 바꿔야지 숙제처럼 다짐을 하셨다. 하긴, 웃을 때마다 보이는 투박한 금니가 왠지 보는 사람의 시선에 걸리적거릴 수도 있겠지. 


선생님의 그런 의견 때문이었는지, 가끔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금니들이 천덕꾸러기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벌써 20년도 넘은 내 금니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견고했고, 씹고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활짝 웃을 때 얼마나 보이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차피 나는 내 얼굴 안보니까 그것도 문제없었다. 남들에겐 보기 흉할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그냥 잊고 지내왔다.


다시 금니 생각을 하게 된 건 한 달 전이었다. 그렇게 도자기로 씌웠던 어금니 하나가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이를 하나 심게 되었다. 임플란트를 전문으로 하시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전 진료를 받을 때였다. 선생님이 놀란 듯 물어보셨다.


와~ 이 금니 언제 한 거예요?


이미 비슷한 반응을 보이셨던 치과 담당 선생님 생각이 나자 조금 창피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수줍게 대답했다. 


아...이거 한 20년은 됐어요...


정말 훌륭해요. 와~ 요즘 이런 금니 보기 힘든데, 정말 멋진 이를 가지셨어요. 이런 건 가능한 한 오래오래 간직해야 해요.


금이 내 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 아름답게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마치 멸종된 생물의 화석이라도 발견하신 듯 경이로워하셨다. 나를 놀리기 위한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동하고 계셨다. 한때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던 천덕꾸러기 내 금니가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곤 했던 상아 조각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문득 생각했다. 같은 것을 보는 시선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시야에 거슬리는 천덕꾸러기와 박물관에 진열될 법한 골동품의 사이. 이 어마어마한 차이는 단지 대상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구나. 


입 안에 반짝이는 보석 하나를 간직한 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앞으로 더 아름다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모든 것은 아름다울 수 있다 (Photo by Pixabay)

 세상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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