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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제라늄 Dec 11. 2019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법

전에 같이 근무했던 오랜 동료 Y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사회에 나와서 그런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동료이기 이전부터 안면이 있었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많은 고민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파리에 나와 살면서도 한국에 갈 때마다 시간을 쪼개어 커피 한 잔이라도 함께 나누며 우리의 인연은 이어져왔다. 그런데 그녀의 퇴사 소식을 다른 직원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었다. 첫 느낌은 당황스러웠고 두 번째 느낌은 서운했다.


그녀는 언제나 열심히 일했다. 정말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것처럼 일했다. 게다가 대단히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쉴 새 없는 압박감을 견디며 그 많은 일들을 해내는 모습이 그야말로 초인 같아 보이곤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늘 행복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편해서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나밖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느낀 점은 그녀가 지나치게 힘들어 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나 또한 같은 회사를 다녔고, 게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진작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왔는데 말이다. 내가 회사를 떠난 후에도 그녀는 거의 10여 년을 더 버텨냈고, 결국 나는 끝내 받지 못했던 사장님의 인정까지 성취해 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해왔다. 그렇게 전사처럼 싸워오던 그녀가 마침내 퇴사를 한 것이다.




언제나 성실하던 그녀를 많이 아껴주시던 본사 직원 마담 N이 있다. 사실 그녀의 퇴사 소식을 나에게 전해준 분도 바로 그분이었다.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항상 Y의 안부를 묻곤 했다. 정말이지 십여 년 동안 변함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그녀의 안부를 물어오셨다. 업무가 전혀 달라서 Y의 소식을 모를 때가 더 많았던 나에 비해, 같은 계통의 업무를 하시는 그분은 Y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행여 걱정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어찌나 챙기시고 마음을 써주시던지.


그와는 반대로 Y는 그분에 대해 거의 무심한 편이었다. 한국에 출장을 갔을 때 Y에게 마담 N이 진심으로 네 생각을 많이 하시니까 꼭 한번 연락을 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래야 하는데... 하고 대답을 흐릴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담 N은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한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에게 그녀의 안부를 조심스레 물어왔으니 말이다. 


그녀의 성격이 원래 살갑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를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장 생활로 이어진 인연 속에서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Y를 향한 마담 N의 진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Y가 알게 된다면 메마른 그녀의 일상에 든든한 응원이 될 거라 믿었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이해관계없이 나를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삶의 가장 큰 기쁨이고 더없이 아름다운 선물 아닐까? 다들 자기 살기에 바쁜 세상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걱정을 해주고 있다니, 이 얼마나 감동인가! 나는 Y가 입버릇처럼 끊임없이 힘들다 말하면서도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누군가의 마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그런데 결국 그녀는 나에게도 똑같았던 모양이다. 앞에서 나는 그녀가 친구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 전화할 때마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불평과 하소연만 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니까 귀 기울여주고 가끔 카톡으로 안부도 자주 물었다. 물론 그녀가 먼저 연락해 오는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본사 동료뿐 아니라 나에게조차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퇴사를 해버린 것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 때는 언제든 오는 법이니까 (Photo by 파리제라늄)


그녀가 퇴사를 했다는 소식 이후로 마담 N은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와 그녀에 대해 물어왔다. 혹시라도 통화를 해 봤느냐, 잘 지내더냐, 좋지 않은 마음으로 회사를 떠난 건 아닌지 등등을 말이다. 마치 딸을 걱정하는 듯한 깊은 두 눈망울에는 그녀의 진심이 넘쳐흘렀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드릴 수가 없었다. 나에게 연락은커녕, 내가 거는 전화도 받지 않았고 카톡도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로서도 그녀에게 연락을 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나대로 황당하리만큼 서운했고, 마담 N의 허망한 표정을 보면서 더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얼마나 넌덜머리를 내면서 회사를 나갔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좁다. 지금 퇴사하면 영영 안 보고 살 것 같은 사람들도 살다 보면 우연히 또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행여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또 우리가 그녀의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굳이 그렇게까지 모질게 인연을 끊어낼 필요가 있었을까? 심지어 우리는 그녀를 늘 응원하고 아끼는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입사를 하고 누군가가 퇴사를 하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그리고 이런 직장이 어떤 이에게는 그저 돌다리 같은 하나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집처럼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단지 도구로 쓸지 터전으로 삼을지 그건 개개인의 자유다. 상관없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은 정말 제각각이다. 




퇴사하기 전부터 다른 직원들까지 붙들고 회사 욕을 해가며 못된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나간 사람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밉고 실망스러워서 그동안 동료로서 잘 지내왔던 기억까지도 모두 퇴색이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큰소리로 거친 욕을 해가면서 침이라도 뱉을 기세로 나간 그 사람을, 하루는 우연히 바깥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퇴사 이후 실업상태에 있었는데, 나를 붙들고 거리에 선 채로 여전히 우리 회사 욕을 30분이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도 우리 회사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자신이 옳고 회사가 틀렸다는 것을 나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것이었을까? 불편했던 그날의 기억이 더해져서 이제는 우연이라도 그를 피하고 싶어 진다. 


반면 어떤 이는 떠나는 마음의 아쉬움을 고스란히 담은 마지막 인사를 회사 전 직원에게 보낸다. 그동안 근무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했고 그 안에서 보람, 기쁨, 희열, 우정을 가득 느끼게 해 준 회사와 동료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인사를 한다. 비록 생의 한 장을 넘기며 다른 도전을 향해 나아가지만, 이 수많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거라 말한다. 설마 매일 좋기만 했으랴. 하지만 그분은 좋았던 모습에 더 가치를 두고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설령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동료였더라도 이 몇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짠해지고, 삶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그와 함께 공유한 느낌이 든다.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가끔 다른 일이 있어 회사에 다시 방문할 때마다 모두가 환영하고 반가워한다. 그 사람이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월급도 많이 받아가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전혀 아니다. 그런 기준이라면 욕을 하며 나간 사람이 오히려 훨씬 나았었다. 


삶이 늘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간과 많은 인연이 소중하다 (Photo by Pixabay)


다음에 Y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동료로서도 친구로서도 그녀에게 있어서 내 존재가 정말로 하찮은 것이었구나 하는 기분까지 들어서 벌써부터 기분이 우울해진다. 아니, 어쩌면 이건 우정 혹은 동료애를 떠난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예의'다.


나에 대한 예의나 마담 N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난 25년 동안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열심히 일해 온 자신에 대한 예의, 자신의 일에 대한 예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 말이다. 내게는 그녀가 걸어온 모든 발걸음이 너무나 훌륭하다. 그런데 아마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아름다운 뒷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나중을 위해 신상에 꼬리 잡힐 일을 만들지 말자는 얍삽한 처세도 아니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나의 결론은 수렴한다. 이것은 삶의 한 조각과 같은 것이다. 스스로가 살아온 삶과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Y가 선택한 뒷모습으로 인해 나는 비록 친구 하나를 잃은 것이지만, 그녀는 지난 25년이라는 삶을 통째로 잃은 것은 아닐는지... 그것이 안타깝다.




세상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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