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계획은 있니?"에 대한 답변
요즘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한 문장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이 문장의 첫머리 글자인 '앞' 자만 들어도 심장이 크게 요동친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뒤에도 한시간 정도는 계속 심장이 두근거린다. 기분좋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숨어 있었던 모든 불안들을 끄집어내서 만들어 내는 것만 같은 불쾌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이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어른들이 많이 모인 자리나 부모님과 단둘이 있어야 하는 자리, 또는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라던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이 오고갈 만한 자리는 애써 피해왔다. 비록 주위 인연들과의 연락은 대부분 끊겼지만, 내 심장을 꽉 붙들고 요란하게 흔들어대는 그 문장으로부터는 두어달 동안 자유로웠다. 그러나 오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피할 겨를도 없이 다시 그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빈씨, 앞으로의 계획은 있어요?" 내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는 문장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이전에는 내가 미리 세워놓았던 화려한 미래 계획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오히려 이 문장을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랬던 내가 대학생이 된 후부터는 이 문장을 더 이상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대학교 입학 후부터 해가 갈수록 향후 계획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점차 커져만 갔고 졸업을 할 때가 되자 두려움이 극심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본격적인 미래 계획을 세워야할 시기에 나는 왜 미래에 대해, 계획에 대해 듣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게 되었을까. 계획에 대해 듣고 말하는 것을 즐겼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차이점은 딱 하나이다. 예전의 나는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는 질문에 답해줄 말이 아주 많았지만 지금은 그 질문에 답할 말이 딱히 없다는 것. 결국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는 말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내가 지금 별다른 계획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미래를 계획하던 학창 시절,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그 이후에는 특별한 계획을 하지 않아도 내 인생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이외의 목표를 두지 않았었다. 유일무이했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학창시절 동안 열심히 공부해왔고 그 결과 나름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미래를 직접 실현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는 것도 잠시였고 곧장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내 인생을 지탱했던 유일한 삶의 목표가 사라지게 되자 마음 한 켠이 뻥 뚤린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대학 4년 동안 뚫린 곳을 매꿀 만한 다른 목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마땅히 대체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남들이 사는 것처럼 취업이나 행복한 가정 꾸리기 등을 새로운 인생의 목표로 대신할까도 생각했으나 어쩐지 그건 또 내키지가 않았다. 다른 학생들처럼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잡고 살아왔던 학창 시절이 썩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아직까지 별다른 계획없는 삶을 지탱해오고 있다.
계획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지만 다만 계획이 없을 뿐이다. 요새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생각은 '삶의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들 하는 것처럼 살아지지 않아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온몸으로 증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삶의 대안을 실천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창업을 하자니 마땅한 사업 아이템은 떠오르지 않고, 제휴 마케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면서 돈을 버는 느낌이라 그만두었다. 어쨌든, 현재 나에게는 '삶의 대안을 만들고 싶다'는 확실한 생각은 있지만 이 생각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계획은 아직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갑작스럽게 던져진,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는 질문에 대해서 마땅히 답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질문자가 나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계획'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곧 시작될 상반기 공채에서 어떤 회사에 지원할 것인지,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등을 알고싶어서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어본 것이겠지. 어떤 답변이 질문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곧 있을 상반기 공채에서는 우리나라 1000대 대기업과 공기업들을 공략할 예정이며 그런 곳들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하면 상대방을 더할 나위없이 만족시킬 수 있겠지. 질문의 의도도, 질문에 대한 정답도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오답을 선택했다. 취업 준비는 전혀 하고 있지 않으며 졸업 후 1년 동안은 내가 생각하는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이다. 이 오답이 질문자를 얼마나 황당하게 만들었을지도 잘 알고 있다. 건물주도 아니면서 취업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은 아니니까. 질문자는 애써 나의 답변을 듣고 느낀 황당함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취업난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상에 불과하다고, 한시 빨리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오답을 선택한 순간부터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이들이 나의 오답에 어떻게 반응할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런 말은 들으면 힘이 쭉 빠진다.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역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취업이라는 사회적 정답을 고르는 것이 가장 현명이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는 질문의 유일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어 나의 답을 쉽사리 바꾸지 못했다. 우선, 나의 답이 정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인지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다. 그런 후에도 나의 답이 정답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는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의 질문자가 원하는 답을 정답으로 인정하겠다. 그때까지는 나의 답이 영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싫은 내색 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신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있니?" 라고 묻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