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마흔, 다시 출근합니다》

다시 쓰는 자기 소개서

by 초이

내 나이 만으로 마흔, 꽉 찬 40살. 오늘은 2년 전, 계약직 경력으로 입사했던 회사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내가 보던 마흔의 부모님은 ‘진짜 어른’ 같았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된 나는 여전히 ‘자라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을 대안학교에서 보내며 남의 기준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 스무살무렵, <푸드스타일링>이라는 직업을 발견해 전공을 찾아 대학을 진학했고, 졸업 후 도제식 훈련을 통한 사회 생활과 해외 봉사, 프리랜서와 자영업까지 쉼 없이 일하며 20~30대를 달려왔다.


그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던 여정이자,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적당한 직업 수련(?) 후 독립하여 프리랜서로 일도 많이 했다.


매거진 <갤러리아> 고메칼럼의 푸드 스타일링



자영업 온라인 판매 마케팅자료

결혼과 출산 전후로도 계속해서 일하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추가가 되었고,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밸런스를 갖추고자

4살의 아이와 함께 나는 자영업에 도전했다.


요리와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

동네에 작은 음식점을 브랜딩하여 시작했지만,

하필 그 무렵 코로나19가 터졌고

가게 문을 닫는 일이 빈번해졌고

배달과 온라인판매의 밀키트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쪽 시장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자영업 2년의 시간을 버티다 폐업으로 정리했다.

실패가 아니길 바랐지만, 번아웃은 빠르게 찾아왔다.


아이를 돌보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기력과 우울감이 짙어졌고,

어느새 마흔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프리랜서로 꾸준히 일하며 불러주는 곳도 있었지만, 온전히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아이와 함께 하는 삶 속에 주어진 시간 안에 일와 육아의 발란스를 맞추는 과정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항상 새로운 것들을 접목시키며 푸드크리에이티브로 일하던 내가 새로운 영감을 받으며 일을 한다기보다, 주어진 일들을 그저 ‘해치우는’ 나날인 것 같았다.


광고촬영같은 경우 주말, 밤낮없이 소통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일들이 있는데 어떤 날에는 아이가 잘 때, 나도 따라 쓰러져 잠들며 연락에 바로 응대하지 못하고, 아이의 시간에 맞춰 나도 생활패턴이 바뀌다보니 관계자들의 니즈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또한 계속해서 발품팔며 새로운 문화를 발견하고 소통해야하는데 바깥으로 나가는 시간은 줄고 삶의 밸런스를 아이에게 맞출 것인지, 일에 맞출 것인지 혼란스러워했던 시간이었다.


자연스럽게 프리랜서로서의 일이 줄어들고,

나를 찾는 사람도 점점 사라졌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내 작업 결과물에 대한 만족이 낮아졌다...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고,

늘 집에서 지쳐 있는 내 모습에 남편은 조심스레 말했다.

“뭐라도 해보는 건 어때? 가까운 마트에서 캐셔라도...”


그 말이 나쁜 의도가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발끈했다.

‘내가 지금 캐셔를 하라고? 내가 어떤 사람인데?’


마음속 자격지심이 고개를 들었고,

그날부터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불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몇몇 회사를 지원하고 면접을 봤지만,

그럴듯한 말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상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방문판매나 상담 영업을 포장한 경우도 있었고,

‘당신의 마음을 찾아드립니다’라며

감정을 이용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나를 알아봐줄 곳은 어디 없을까.’

구직활동을 하는 내내 자존감은 점점 깎여나갔고,

이력서 한 장 쓰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함께 일했던 분야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헤드헌터의 소개로 연결된 그 회사는 규모도, 문화도 괜찮은 곳이었지만, 조건은 ‘계약직’ 내가 이제껏 쌓아놓은 커리어를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일을 해야하는 상황. 나의 프리랜서로서의 커리어가 직장에서는 몇줄의 경력으로만 인정되어 다시 새롭게 일을 하는 상황. Reset!


연락을 받고 자존심이 많이 상하고 고민도 많았지만,

‘다시 일하고 싶다’는 내 마음이 더 컸다.


어른들 말처럼 인생은 장거리달리기지,

100m 달리기도 아니고

아이와 함께 하는 내 삶에 밸런스를 맞춘다면

직장인의 9to6만큼 안정적인 생활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내 인사팀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넘겼고

인터뷰와 실기테스트까지 마치고,

내 나이 마흔에 다시 새로운 조직의 신입사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