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를 찾아라! (9)

끈적이는 여름과 처음 배우는 유화 사이의 기억들

by 최우성

어느새 몸은 땀으로 덮여있다. 피부에 붙어있는 염분들이 미약하게나마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에 말라가고 조금 전까지 열에 의해 흘렀던 땀방울들은 전부 사라지고 흔적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지금 새하얀 소금사막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큼한 기류가 사막을 덮치지만, 화실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가 감춰준다. 내가 느낀 작년 6월의 여름에 대한 기억이다.




수업의 마지막은 유화였다. 사실 오랫동안 화실에 다녔지만 이날 처음 배우는 날이었다. 선생님의 시범 작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면서 확신했다. 나와 정말 잘 맞는다는 것을 말이다. 끈적거리는 날씨와 어울리는 재료라고 생각했다. 붓의 종류도 다양하여 세밀하게 작업하는 것도 가능했기에 첫 주제인 정물 표현에서 분화(盆花)를 그리면서 여러 기법을 사용해 보았다. 최대한 꽃을 표현하려고 애쓰면서 그렸다. 잎과 꽃 받기, 꽃자루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형태는 생각보다 잘 잡혀있지 않았다. 비뚤어진 선과 어색한 그러데이션이 독특한 느낌을 주진 못했다. 몇 분 고민한 끝에 차라리 흐트러뜨리고 싶었다. 백 붓으로 형태를 지우기 시작하자, 이내 그림이 독특해지기 시작했다. 레이어를 쌓듯이 앞선 작업을 반복했다. 완성 후 세로로 그렸던 것을 가로로 눕히자, 기모노를 입은 여성을 연상시킨 듯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원소를 찾아라! (9) 001.jpg 기모노를 입은 여성을 연상케 하는 그림. 총평에서는 패션쇼를 연상한다는 말을 들었다.




원장 선생님께서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셨을 때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날따라 초저녁의 느낌을 주고 싶었기에 색상을 노란색, 주황색, 갈색과 같은 강렬한 색상을 가지고 그렸다. 형태는 여전히 제각각이지만 원래부터 신경을 잘 쓰지 않는 스타일이라 이번에도 즐겁게 그릴 수 있었다. 선생님이 뒤에 있는 풍경은 연필로 그려보라는 아이디어를 주셔서 해봤는데 앞의 풍경이 주는 묵직한 느낌을 받쳐주는 기분을 받아 만족했다.


18화 001.jpg 선생님이 유독 좋다고 하신 풍경 그림


마지막 수업은 인물 시간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날만큼은 장난스럽게 그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원래는 멋진 로맨스 영화의 포스터처럼 그리려 했으나 얼굴 비례를 너무 망친 탓에 전략을 바꾼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그렇게 얼굴 모양의 꽃을 그리자는 다소 기괴한 상상과 함께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시고는 화실 전시에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진지하셔서 얼떨떨한 기억이 선명하다.


그저 망치려고 그려본 것인데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것을 본 검은 선생님의 뼈 때리시는 말씀으로 마지막 수업까지 재미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네가 그린 건 얼굴 모양의 면봉이냐?"


19화 001.jpg 흰색 부분은 사람의 이목구비를 표현하고 일부러 잔상을 남긴 것이다. (다시 보니 면봉 같기도 하다.)




원소 수업을 듣고 다음과 같이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릴 때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늘 즐겁게 그리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비워있어야 그만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1. 단순히 그리기보다는 무엇을 표현하는지가 중요하다.

2. 작품 보관도 실력의 일부이니 소중히 대하자.

3. 너무 많은 생각은 되려 작품을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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