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70년 전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공산주의 유령이 사라지고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화하는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유령을 맞고 있다. 기하급수라는 유령이다. 기하급수적 변화는 디지털혁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이 유령은 미래 불확실성을 증폭하고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은 가차 없이 패배의 나락으로 밀어버린다.
기하급수 위력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인구론'을 저술한 토머스 맬서스다. 그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했다. 25년마다 인구가 2배 늘면 2세기 뒤 인구와 식량비율은 256대9가 되고 3세기 뒤에는 4096대13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우려와 달리 인류는 출산율 저하로 인구증가 둔화기를 맞았지만 그의 예견대로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었다면 아마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지난 세기, 유럽 로마클럽도 지구자원 고갈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실무연구를 수행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팀은 경제성장이 환경 및 자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고 1972년 역사적인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말미에 섬뜩한 구절이 나온다. '연못에 수련(水蓮)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갑절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연못이 완전히 수련에 점령되는 날은 바로 다음날이다.'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 전도사다. 아톰에서 비트로의 전환을 선언한 그는 자신의 시그니처 저작 '디지털이다'에서 디지털 세상의 기하급수적 변화 속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당 1페니의 일을 하는 사람의 급여를 매일 2배 올려주면 새해 첫날은 1페니, 둘째날은 2페니, 셋째날은 4페니를 받고 1월 한 달간 총 2100만달러를 받는다. 2월은 1월보다 겨우 3일 짧지만 1월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 1월31일은 1000만달러 이상 받지만 2월28일은 130만달러밖에 못 받는다. 네그로폰테는 지금 우리는 컴퓨팅과 디지털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마지막 3일 안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학의 나라 인도에 전해지는 체스 이야기도 기하급수에 관한 것이다. 한 수학자가 전쟁게임 같은 체스를 만들어 왕에게 보여주자 만족한 왕은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수학자는 체스판 64칸에 쌀을 채우되 첫 칸은 쌀 두 톨, 둘째 칸은 네 톨, 셋째 칸은 여덟 톨 등 매번 2배를 채워달라고 했다. 기하급수 원리를 적용한 부탁이었다. 왕은 소박한 제안이라 생각했지만 엄청난 비밀을 알고 수학자를 처형했다. 수학자의 요구대로 쌀을 채우면 마지막 64번째 칸에 넣을 쌀은 1844경6744조737억톨이 넘는다. 쌀 100만톨이 약 1㎏이므로 환산하면 184억톤이다. 수학자가 산술급수 방식으로 첫 칸은 두 톨, 그다음부터 매번 두 톨 더 채워달라고 했다면 마지막 칸에는 겨우 128톨이 들어갈 뿐이다. 이렇게 산술급수와 기하급수는 천지 차이다. 출발은 같아도 어느 순간부터 천문학적 격차가 벌어진다. 일상에서 우리는 무심코 기하급수를 말하지만 이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협이 될 수 있다.
디지털혁명의 속도는 산업혁명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다. 산업혁명이 산술급수라면 디지털혁명은 기하급수다. 무어의 법칙처럼 2년에 2배의 속도와 성능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남보다 앞서려면 그 이상 속도로 달려야 한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사력을 다해 달리지만 뒤로 움직이는 체스판 모양의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다. 붉은 여왕은 말한다. 여기서 제자리에 머물려면 힘을 다해 뛰어야 하고 앞으로 가려면 지금보다 2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한다고. 디지털혁명기를 사는 우리가 딱 그런 처지다.
*이 글은 머니투데이 투데이 창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2021.6.30)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608975?lfrom=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