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호. 오우야에스프레소바
♬ 서로를 바라보며 어디로 가다가 xxxx - 김오키
캐닝 스케줄로 호출을 받아 일주일만에 출근했다. 늘 같은, 반복되는 작업.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세팅하고, 커피를 마시고, 박스를 접고, 커피를 마신다. 어떠한 각성의 효과도 제공하지를 못하는 걸 봐서는 카누 커피는 내게 그저 물처럼 마시는 음료일 뿐이다. 이것저것 필요한 일들을 하다보니 사실 멍도 조금 때린다 어느새 12시가 다 되었다.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된 커피 한 잔이 절실하다. 어수선한 틈을 타 회사 근처에 있는 [ 오우야에스프레소바 ]로 향한다.
카페에 키오스크가?
여기는 정말 맛으로 승부하려나 보다.
오우야에스프레소바는 출근하는 길에 여러번 지나쳤던 덕분에 눈에 아주 익은 곳이었다. 매장은 바를 제외한 전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밖에서 보기만 해도 내부가 어떠한 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매장의 이름도 상당히 특이해서, 한 번 본 사람은 잊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페 이름이 ㅗㅜㅑ라니. 맛이 대단해서 "오우야"소리가 나오기 때문인걸까? 제발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장을 들어서려는데 나가는 사람과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잠깐의 기싸움 끝에 내가 문을 당기자, "감사합니다"라며 2-3명의 사람들이 우루루 나가더라. 얼떨결에 남 좋은 일을 했다. 난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문을 열 때 까지 기다려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매장에 들어서니 주문을 막 마친 한 여성분을 포함해 몇 명의 사람들은 이미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더 몰려올 사람들을 생각하니, 주문을 서둘러야겠다. 처음엔 여느 때와 같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려 했다. 그런데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더니 배가 조금 덜 찬 기분이다. 이럴 때는 라떼가 최고다. 그런데 가격이 고작 3,600원이라고? 가격도 참 맘에 든다.
이번에는 잔이 작은 겁니다. 제 손이 큰게 아니라.
'에스프레소바'라는 이름에 맞게, 매장 내부에는 의자가 없는 높은 원형 테이블 단 두개만 배치가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다들 포장으로 주문을 하더라. 그런데 주문을 기다리는 도중, 한 여성이 에스프레소 잔을 건네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연세가 있는 분들이 종종 에스프레소를 시키는 것을 목격하긴 했는데. 해봤자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원형 테이블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다. 그러라고 있는 장소긴 했지만 내게는 꽤나 생소했다. 그리고는 내가 주문한 라떼가 나오기도 전에 잔을 내려놓고는 자리를 떠난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에스프레소에 도전을 해봐야겠다.
마침내 내가 주문한 라떼가 나왔다. 잔을 건네받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에게? 잔이 왜이렇게 작아. 이래서 3,600원이었구나. 인근의 파스텔커피도 비슷한 크기의 잔으로 줬었는데. 용량을 적게 한 대신, 가격을 조금 낮춘 모양이다. 아마 점심 식사를 한 뒤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하는 직장인을 겨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데, 내가 뜨거운 거 시켰나? 에이 모르겠다. 그냥 마시자.
예전에 출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카페에 대해 전해들은 적이 있다. 협소한 매장에 바 형식의 스탠딩 테이블을 배치하고, 작은 용량이지만 맛있는 커피를 판매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출근시간에만 운영을 하고 오후가 되기 전에 마감을 한다고 들었는데. 세상에는 참 다양한 컨셉의 카페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도 라떼아트 할 줄 아는데. 그냥 그렇다구요.
식기 전에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하트인지, 나뭇잎인지 모르는 라떼아트가 되어 있었다. 나도 예전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라떼 주문만 들어오면 연습 많이 하곤 했었는데. 저렇게 물결이 있는 거품을 만드려면 손목 스냅과 컵의 기울기가 참 중요하더라. 물론 저렇게 된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맛은 생각 이상으로 고소했다. 끝맛이 끈적끈적하게 남아 혀끝에 맴도는게,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역시 산미가 있는 원두는 라떼랑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모금, 한 모금 들이키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일을 하면서 마시려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잔은 어느새 거의 다 비워져 있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정도 양은 한 번에 마실 수도 있겠지만, 커피의 참맛은 들이키는 것 보다 음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잔이 아무리 작더라도, 원샷은 참 어렵다.
저 종이 집에 들고 왔음ㅋ
작년 11월 쯤이었나? 점심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러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코로나19 이슈로 곤욕을 치른 수험생들을 위해, 오우야에스프레소에서는 일명 '소스페소' 이벤트를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문을 할 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추가로 지불하면, 올해2020년 수능을 치룬 이들에게 무료로 한 잔을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코로나19 이슈로 험난한 한 해를 보냈음에도 이런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진행하다니. 살아남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이 동네를 찾았을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왠지 그날은 에스프레소가 땡길 것만 같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