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고 기다려봅니다
내가 호야에게 처음 물을 줬던 건, 지난겨울이었다. 이름이 호야 인지도 몰랐었다. 내겐 그냥 작은 나무였을 뿐이었다. 그때 호야는 온전한 초록색이었다.
내가 패딩을 벗자, 호야의 이파리 테두리가 점점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노화로 흰머리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 아픈가 싶어서, 영양제를 꽂아 주었다. 그런데도 원래 초록색으로 변하지 않았다. 나는 드문드문 물만 주면서, 이파리가 마르지 않고,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반팔을 입어야만 하는 날씨가 되었을 무렵, 호야를 베란다로 옮겨 샤워기로 물을 흠뻑 쏴주었다. 그리고 물이 쭉 빠질 때까지 그대로 베란다에 두었다. 물이 다 빠지고 나서도 화분을 다시 거실로 끌고 오기가 귀찮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10일 정도 그 자리에 두었다. 조금 잊었었기도 했다.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있는데, 문뜩 거실에 휑해 보였다. 화분을 들여놓아서 빈 곳을 다시 채워야겠다 싶었다. 호야가 잘 살아있는지 이쪽저쪽을 바라봤다. 핑크색 이파리가 보였다. 뭐지. 이제 진짜 아파서 벌겋게 짓물렀나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모르는 나무여서, 네이버에 '렌즈' 기능을 이용했다. 사진을 '렌즈'로 찍으면, 사진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사진을 찍어보니, '호야'라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름이 뭐랄까. 호야. 원래 이름은 '승호'인데, 끝 글자만 불러주는 것 같다. '호야'하고. 참으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이름처럼 느껴졌다
'호야 이파리 핑크색'이라고 검색해보니,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게시글을 몇 개 읽어보았다. 핑크 이파리의 공통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다.
'햇빛과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있으면, 호야의 이파리가 핑크색으로 변합니다.'
호야의 핑크 이파리는 베란다의 큰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덕분에 변한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호야를 다시 보니, 생기가 돌아 발그레진 것 같았다.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엄마에게 분홍 이파리가 된 호야에 대해 말했다. 내가 물도 잘 주고, 햇빛도 잘 받게 해 줘서 그렇다고 덧붙여 말했다. 실은 베란다에 방치해 둔 거면서.
"잘했네! 저거 작년에 5000원에 주고 사서 저만큼 자란 거야. 호야도 꽃핀다? 한번 찾아봐. 엄청 예뻐. 그런데 줄기가 3년은 자라야지 꽃을 볼 수 있데."
나는 당연히 벤자민처럼 꽃을 볼 수 없는 식물인 줄 알았다. 내가 지금껏 봐왔던 호야는 그냥 이파리만 치렁치렁 느러지며 자라기만 했다. 호야 꽃 사진을 보니, 손톱만 한 한 별 모양의 핑크색 꽃들이 동글동글 촘촘하게 모여 있었다. 아기자기 너무 예뻤다.
"와, 호야 신경 써서 키워야겠네. 그 귀한 꽃 보려면. 빨리 꽃 폈으면 좋겠다."
"아니야. 자주 물 주고, 자주 쳐다보면 안 돼. 그냥 무심하게 내버려두어야 잘 커. 엄마가 예전에 화분을 다 죽인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많은 관심을 줬을 때였어."
나는 '엄마 말' 대로 잘 키우고 있었다. 가끔 기억해내고, 가끔 바라봐 주니 호야가 핑크 이파리까지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꽃도 기다리지 말고, '무관심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