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도미는 저녁을 먹고, 길을 천천히 거닐며 맥주 한잔하기 좋은 바를 탐색했다. 한국이었다면, 미리 어디 바가 좋은지 인터넷에 찾아보고 갔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든 다 상관없을 거 같았다. 저녁도 그냥 끌리는 곳에 들어갔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간이 의자가 놓여진 레스토랑이었다. 로컬 분위기가 풀풀 풍기길래 들어가서 치킨 요리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맛있었다.
솔직히 알아보는 것도 좀 귀찮았고, 애써 찾아간 곳이 도미 맘에는 안들 지도 모르고, 나도 그럴 수도 있고, 여행의 묘미는 우연이 만드는 거니까. 하하.
라이브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는 바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작은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도미도 그곳이 딱 끌렸나 보다. 저기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나는 저기 가도 상관없다고, 어중간한 긍정의 대답을 했다. '저기 맘에 든다'는 의견을 100% 완벽하게 드러낼 만큼 도미와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이서 함께 결정을 해야 할 때, 나의 약간의 애매한 대답으로 상대방이 좀 더 편하게 선택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우리는 도로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각자 삔땅 맥주를 시켜, 흥겨운 노래에 맞춰 어깨를 살짝살짝 들썩거리고 있었다.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8명 정도의 사람들의 흥이 점점 더 오르는 게 보였다. 그들은 술을 끊임없이 시키고, 밴드에게 신청곡을 말했고, 춤은 더욱 격해졌다. 그런데 그들의 티셔츠 뒤에 숫자 '40'이 적혀 있었다. 40? 다들 40살인가? 그러기에 저 여자는 너무 어려 보이고, 저 여자는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그냥 어디서 옷을 사서 같이 입은 건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신나게 춤을 추는 그들 곁을 지나가는데, 내 안에 얌전히 있던 댄스 DNA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 찰나, 댄스 무리 중 한 명의 여자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같이 춤을 추자!"
"좋아!"
고마웠다. 나의 흥을 발산시킬 수 있게 도와줘서. 나는 나를 잡아당긴 여자에게 물었다.
"너네 왜 같은 티셔츠를 입었어?"
"내 40살 생일 기념으로 내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 왔어. 내 티셔츠 앞에는 '컬스니의 40살은 쩔어.'라고 썼고, 다른 친구들은 '컬스니의 40살 생일 파티 크루'라고 쓰여있어."
"와! 대단하다. 컬스니 생일 축하해!"
호주에서 온 컬스니와 크루는 발리에서 생일 파티 중이었다. 컬스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티셔츠를 함께 맞춰 입은 발상 자체가 너무 귀여웠다. 친구들은 모두 같은 연령대로 보이지 않았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어리거나 많은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기 참 어려운데. '친구'의 폭이 참 넓구나.
그들은 단지 그들끼리만 놀려고 하지 않았다. 바 밖에서 밴드와 춤추는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바 안으로 이끌었고,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춤을 추자며 손을 내밀었다. 밴드 보컬 대신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밴드에게 술을 대접하기도 했다. 자신끼리만 놀아도 충분히 즐거울 텐데,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바의 분위기는 더욱 들썩이고 음악과 웃음으로 가득 찼다. 나도 나의 40살 생일을 컬스니처럼 유쾌하고, 혈기 왕성하게 보내고 싶어 졌다.
컬스니 크루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데, 저 멀리 테이블에 한 커플이 앉아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만약 내가 남자 친구랑 이 바에 지금 왔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저기서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겠지? 감히 여기 안에 들어와서 춤을 추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을 거야. 흥을 억누르며 있었겠지?'
도미니크도 자리를 박차고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우리는 한 손에 삔땅 맥주를 들고, 한 손을 공중에서 나풀나풀 흔들며 춤을 췄다. 꾸따에서 첫날밤은 처음 만난 도미니크와 처음 만난 컬스니의 생일 파티를 축하하며 보냈다.
나는 내가 어디서에서 저녁을 먹었고, 어디에서 맥주를 마시며 춤을 췄는지 모른다. 이름도, 주소도 모른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곳에서 즐거운 밤을 보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좋은 장소는 좋은 사람과 함께한 추억으로 만들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