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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 Oct 26. 2019

이름 붙이기 명상을 했는데요

10월 넷째 주 명상 기록

 이번 주 새로운 명상 과제를 받았다. 기본적으로 명상 시에 호흡을 관찰한다. 추가적으로 '이름 붙이기 명상'을 해야 한다.


 이름 붙이기 명상법은 다음과 같이 진행하면 된다.


 1. 잠자리에 들기 전에 좌선하고, 하루를 돌아보며 마음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일을 반조한다.

 2. 자신의 상태,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한다.


예시) ' 그때 나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친구의 말이 당황스럽고 짜증 났어. 그 말이 나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알아차림이 약한 경우에는 마음은 기억과 의식 수준에 따라 편향성을 띠고, 표정, 말, 행동으로 쉽게 드러난다고 한다. 일종의 자동 항법 장치같이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름 붙이기 명상법을 통해 마음의 일어남을 파악하고, 감정과 나를 분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한번 해봐야겠다.







10월 19일 토요일 오전 7시 ~ 7시 20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매트 깔고 앉았다. 호흡을 느꼈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아서 고요했다. 그런데 골반은 덜 깨어났는지 편하게 앉아있기 어려웠다. 그래도 호흡 접촉면을 잘 느꼈다.




10월 20일 일요일


 경주에서 러닝 크루와 함께 마라톤 하고, 단체 숙소에서 있어서 명상을 할 수 없었다.




10월 21일 월요일


 러닝 크루와 함께 경주 투어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12시였다. 바로 잤다.




10월 22일 화요일


 마라톤과 음주 후유증으로 하루 종일 기절해 있었다. 마음속에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뭐가 옳은지 모르겠어서 행동 자체를 보류했다.




10월 23일 수요일 오후 11시 30분 ~ 12시


 엄마가 당분간 집에서 지낸다. 엄마를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만나니까 좋았다. 주방에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소리와 냄새 덕분에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엄마한테 잘해줘야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하루도 못 갔다.


 엄마가 건강검진을 해야 해서, 검진센터로 같이 갔다. 검진 시간만 7시간이고, 수면 내시경도 있고, 엄마 혼자 사람과 차로 북적거리는 서울역을 보내는 것도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랑 오며 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엄마한테 그만 좀 말하라고 짜증 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했냐면, 한 부부에 대한 불만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부부가 맞긴 하다. 평소에 아빠 건강 어떠냐고 안부 한번 안 묻다가, 우리한테 얻어낼 게 있으니까 얼마 전에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연락이 왔다. 전에 사모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전화를 받으니, 통성명이나 '여보세요'라는 인사 없이 다짜고짜 자기가 답을 듣고 싶은 질문부터 말했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경우가 없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매번 그런 식이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안위를 물어서 어이가 없긴 했다. 배려와 교양은 없다가도 필요에 의해서 갑자기 만들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튼 저 연락 때문에 1년 전으로 또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동안 저 부부와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1년 치를 아직도 엄마는 마음속에서 털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자꾸 나만 보면 입으로 그 응어리를 뱉어낸다. 엄마는 카세트테이프처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경험담을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나는 10번 넘게 같은 내용을 반복 듣기 했다. 그래서 그만 좀 이야기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계속 얘기하길래,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분명 그 사람들이 기본 예의가 없긴 한데, 남 욕 듣는 게 힘들었다.


 엄마가 좋은데 그 부부 이야기하는 엄마는 불편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10월 24일 목요일 11시 45분 ~ 12시 15분


 명상하다가 차 교통사고 났다. 그러니까 내가 운전을 하고 있고, 급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앞차를 박았다. 펑! 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방 안이었으니 다행이지. 앉아서 잠깐 잠들었던 것 인가. 오랜만에 운전해서 그랬던 것인가.




10월 25일 금요일 오전 7시~7시 30분


 처음 명상 시작할 때 5분도 앉아있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30분이 후딱 지나 있었다. 오. 시간이 너무 잘 가서 놀랍다. 오늘 상당히 호흡만 잘 느꼈다. 아침에 비몽사몽 해서 떠오른 생각이 별로 없었던 덕분인 듯하다.


 불편한 것은 명상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생겼다. 아침에 청소기를 돌렸다. 동생 방을 돌리려고 하는데, 고데기를 서서 쓰고 허리를 굽혀서 바닥에 내려놓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했다. 동생은 고데기를 쓰고 항상 방바닥에 둔다. 방에 화장대도 서랍도 있는데 단 한 번도 가구 위에 올려 두질 않는다. 보기도 지저분하고, 도대체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 안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 그러했다. 내가 고데기 좀 위에 올려놓으라고 말했다.


"바닥에 두는 게 편해."

"청소기 밀 때 불편해. 위에 올려놔."

"그냥 한 번만 쓱 옆으로 치우고 하면 되지." 자기 방 밀지 말라는 소리는 또 안 한다.

"너는 편하겠지만 나는 불편해."

"언니는 언니한테만 관대해."

"너는? 그렇게 네가 관대하면 청소해주는 사람 생각 안 하고 고데기를 맨날 방바닥에 굴러 다니게 두니?"


 이렇게 싸웠다. 나는 청소기 한 번도 안 돌리면서, 더럽게 방을 쓰고, 고데기 정리 안 하는 동생의 행동이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남한테 관대하지 않으면서 나한테 관대하지 않다고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


 나도 안다. 말을 곱게 하진 않았다. 바닥에 뒹구는 고데기를 보는 순간부터 차곡차곡 쌓인 분노가 올라왔었다. 그동안 고데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삭을 주우면서 청소를 했었다.


 동생은 11월 초에 시험을 봐야 해서, 청소와 빨래는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나는 우선 집이 깨끗한 게 좋다. 그래서 지금 혼자 집안일하는 것은 싫진 않다. 다만 동생이 고데기만 위에 올려놓으면 괜찮을 것 같다. 청소기 돌릴 때 허리 한번 굽히는 게 일이다. 쓰고 나니 정말 별거 아닌 허리 굽힘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데기는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단어이다.


 동생은 백날 말해도 안 올려놓는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랬다. 아. 내가 왜 굳이 동생 방 청소기 돌리면서 스트레스받고 시간을 뺏겨야 하는 거지? 이제 안 돌리면 되겠다.


 그런데 청소를 안 하면, 동생이 돌아다니면서 동생 방의 더러움이 집 전체로 번질 텐데. 그것도 맘에 안 든다. 동생 말대로 고데기를 그냥 밀면서 청소를 할까. 그렇다면 다음에 청소하다가 고데기가 청소기에 밀려서 침대 밑에 들어갈 것 같다. 후후. 이건 복수인가. 명상을 해도 참. 그러려니 하면서 살긴 어렵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유치하다.


 이 사건 후에 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한테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청소하지 마. 나는 엄마가 집 전체 청소기 돌리라고 해도 안 돌려. 나는 내방만 청소하고, 빨래도 안 해."

"엥? 어떻게 그래?"

"아쉬운 사람이 집 나가라고 하겠지. 그리고 엄마가 내 방문 앞에 커튼은 달아뒀다? 내가 방 깨끗하게 청소하면 커튼을 말아 올리고, 더러우면 커튼을 내려놔. 너는 집 청소를 안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동생 방 빼고 청소하고, 동생이 방의 먼지를 옮겨 다닐 거 같으면 동생 방에 발매트를 하나 깔아놔."


 명쾌하다. 일단 동생 방 청소를 안 해야겠다. 11월 초까지 내버려 두어야겠다. 그 후에는 당연히 집안일 분담을 해야지. 고데기가 뭐라고!





 

이름 붙이기 명상을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다. 가족의 치부와 불평불만만 쏟아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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