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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13. 2019

가벼우니까 조심하세요.

나의 기준과 당신의 기준


"그거 가벼우니까 조심하세요."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샤브샤브 식당에서 직원분이 테이블 세팅을 하는 중에 내가 쟁반에 담긴 소스 그릇을 덥썩 집어 들었다. 도와주겠다는 선의였다.

내가 손을 뻗자마자 직원분은 다급하게 ‘가벼우니까 조심하세요.’ 라고 덧붙였고, 그 말끝이 채 닫히기도 전에 나는 소스 그릇을 ‘냅다’ 그야말로 ‘냅다’ 패대기를 쳐버렸다.


이렇게 써놓으니 무슨 진상 손님 같지만, 내가 진상짓을 한 것이 아니라 그릇이 보기보다 너무 가벼워서 잡는 힘의 예상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무의식 안에 프로그램 되어 있던 대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상식적인 힘으로 잡았을 뿐인데, 그것이 그 소스 그릇에게는 너무 과한 힘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소스그릇은 비현실적일만큼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중간쯤에서 멈출 것을 예상하고 '적당한' 힘을 주어 들어올렸으나 그만 힘이 넘쳐나서 그릇을 '훌쩍' 허공으로 띄웠고, 제대로 테이블에 안착시키지 못한 채 ‘냅다 패대기’ 친 것이다.


무거운 것을 조심하는 만큼, 가벼운 것도 조심해서 다뤘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구 끝까지 쫒아가서 해명할거니?"


사람사는 세상, 많이 가까운 혹은 적당히 가까운 이들과 원치않는 오해가 생기고, 그러다가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별날 것도 없는 일상, 세월의 하중이 쌓이면 생기는 자잘한 균열이다. 나는 그 작은 균열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잡고 싶어서 안달복달이었다.

안달복달이 간혹 상황을 되돌리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결국은 더 꼬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스스로의 소심한 성격 탓을 하며 한껏 움츠려 들었고, 움츠려든 이면으로는 내 진심을 몰라주는 상대를 원망하기도 했다.


꽤나 오랫동안. 꽤나 여러번.


그런 나를 보면서 한 친구가 말했다.


“지구 끝까지 쫒아가서 해명할거니? 내버려 둬. 그냥 너랑 다른 거야.”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면서도, 제대로 알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배려였던 어떤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음을, 나의 선의가 모두에게 선의가 아님을, 나의 상식이 모두의 상식이 아님을, 그렇게 숨쉬는 매 순간 완급조절이 필요함을 알아가느라 내내 뒤뚱거렸다.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고 슬쩍 '인생사' 아는 척을 해 보지만 제 버릇 개 못준 나는 여전히 소심하며,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또, 또, 또 지구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만 지금은 정신 차린 순간에 겨우 끼익! 거친 파열음을 내면서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 설 줄은 알게 되었다.


뒤뚱뒤뚱 살다보니, 사는 날에 ‘당연한’ ‘적당한’ 혹은 ‘이정도면 괜찮은’ 의 절대기준은 존재 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있는 몫은 제각기 다르고,  때로 어떤 것들은 너무나 가벼워서 조심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내 기준에 따라 당연하게 무거움을 조심하고, 뜨거움을 조심했지만 나의 상식만을 믿고 가벼움을 조심하지 않아서 소스 그릇을 패대기 쳐 버렸듯, 나는 여전히 숨쉬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굽이굽이 만나고 헤어지는 시간마다 나의 기준과 당신의 기준이 같지 않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본문과는 상관없는 사진.

아직 추웠던 제주의 봄날, 그간의 상식과는 달리 밀크티는 차갑게 먹는 것도 제법 맛있음을 알게 되었다.



*보너스 트랙- 나의 '유서깊은'  소심함에 대하여.


내가 사는 지역은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있다. (지역명은 밝히지 않겠다.) 이도 저도 아닌 사투리가 뒤엉켜 묘한 억양을 지어내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서로 말을 시켜보면 외지에서도 단번에 알아본다고 한다. 적어도 반경 30km 이내로 지역이 좁혀진단다.

그런데 내 말투를 들어보면 사투리 억양이 거의 없다며, 이 지역 사람이냐고 되묻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태어났고, 대학생활 4년, 서울에서 오락가락 몇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토박이 중에 토박이로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말하면 한번 더 놀라면서 그럼 사투리 안 쓰려고 따로 연습했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그때 나는 대답한다.


"아뇨, 제가 어릴때부터 너무 소심해서, 말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사투리를 배울 일이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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