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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pr 22. 2020

뒤통수가 시작이다.

“니가 생긴 건 잘 뛰게 생겼었거든? 그래서 얼마나 잘 뛰나 보자고 운동회에 아줌마들이랑 줄줄이 갔었지. 운동장에 주욱 서서 기다리는데 이제 1학년 달리기를 한다더라구. 그래서 아줌마들이랑 ‘이거 1등인지 2등인지 한번 보자’ 하고 잔뜩 기대를 했단 말이지. 그런데 세상에! 아줌마들이 배를 잡고 웃는거야. 야야, 쟤 뛰어오는 거니, 걸어오는 거니?”          


1학년 첫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에서 나는 꼴찌였다. 6학년 내내 꼴찌였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놓치지 않고 꼴찌였다. 


나는 항상 느렸다.




자녀들 거느리고 소풍나간 부모님 친목회 모임, 우측에 비스듬히 안겨 있는 '아기'가 나다. 


나는 부모님 친구들의 자식들중에서 가장 어린 막둥이였다.

늦게 태어난 귀한 핏줄이라고 없는 살림에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백일상을 앞에 두고 주인공은 정작 목도 제대로 못 가누고 축축 늘어졌으며 걸음은 늦되서 두 돌이 다 되어서야 겨우 걸었단다. 그 걸음조차 시원찮아 툭하면 넘어졌다. 원피스에 받쳐입은 하얀 타이즈는 하루도 못 가 펑펑 구멍이 났고, ‘무르팍’은 성할 날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지금까지도 희미한 자국을 찾을 수 있을 만큼, 팔이며 다리며 수 없이 넘어진 흔적이 고스란히 박혀있다.           




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애써’ 괜찮았고, 조금 지나니 ‘사정없이’ 질투가 났고,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무심해졌다. 짙은 무기력과 한숨과 패배감이 무심함과 함께 차올랐다. 밤낮없이 누워 지내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연기가 되거나 쑤욱 땅으로 꺼져버릴 수 있을까, 실현 불가능한 상상을 했다. 또 누군가의 뒤통수를 마주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어서 핸드폰은 항상 꺼져 있었다.    

 

잠결에 핸드폰이 울렸다. 아차, 꺼놓는 것을 깜박했다.

잠결이라 번호도 제대로 확인을 안 하고 받아버렸다. 02로 시작하는 번호, 번호를 제대로 확인했더라면 광고 전화겠거니 하고 그냥 끊어버렸을 것을 잠결이라 ‘실수’로 받은 것이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가 들리자 상대가 ‘아휴..’하고 대뜸 한숨을 내쉰다.     


“저기, 최**작가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며칠 동안 전화를 몇 번을 했는데!”     


꺼져있는 전화에게 끈질기게 연락을 해 준 감사한 분 덕에 나는 세상 밖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수줍게 내놓을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 날, 나는 부산 여행 중이었다. 함께 한 친구에게 사실은 좋아 죽겠으면서도 무심한 척 표정관리를 하고 고백을 했다. 축하주을 얻어마셨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한 계단 더 커리어를 쌓은 글벗들의 단톡방에 역시 무심한 척 소식을 알렸다. 축하 인사가 쉴 틈 없이 올라왔다.  좋은 시작이 될 것이라 믿었다. 시작한 걸음, 넘어지지 않고 단단하게 걸어갈 것이라고.        

          

그러나 이후에도 나는 수시로 좌절하며 툭하면 넘어지기를 반복하느라 ‘작가’라는 이름은 마음 안에 짙은 물결만 새겨두었다. 찰랑 흔들면 왈칵 차오르는 그런 이름이었다. 간간이 글로 밥벌이를 했으나 활자를 썼다는 것일 뿐, 내가 만든 세상을 누군가에게 내보이는 일에는 내내 닿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전화벨이 울렸던 그 날을 더듬어 본다. 몇 가지 우연이 겹친 억세게 운이 좋았던 그 전화 한 통은 그 이전 해 공모에 도전했던 결과물이었다. 본선에서 똑 떨어지고, 얼마 후에는 습작과 병행하던 밥줄도 똑 떨어졌었다. 어찌어찌 1년을 버티던 중에 지치고 지쳐서 이제 작가 따위 하지 않겠노라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 상실감에 생활을 내팽개치고 밤낮이 뒤바뀐 것이었다. ‘작가’라는 글자가 마음에서 지워지느라 그렇게 헛헛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1년 전에 받은 내 글이 참 좋았다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때 공모 마감을 하루 앞두고 철야를 했었다. 그동안 공부하던 것과 다른 장르였던 터라 낯설고 서툴렀지만 도전하고 싶었다. 도와주던 선배 언니조차 다음에 하라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하고 싶었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서 밥도 굶어가며 내리 17시간 동안 꼼짝 않고 최종 수정을 했고 마감 직전에 응모를 했다. 결과는 최종심에서 탈락이었지만 내가 지레 포기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다른 것은 보지 않고 내 눈앞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던 순수한 절정이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던 순간이 포기의 순간에 서 있는 내게 전화 한 통의 기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요즘도 나는 뒤통수를 본다. 누군가의 출간 소식, 누군가의 메이저 진입 소식, 누군가의 대박소식. 제각각 알록달록한 뒤통수가 저 만치 앞에서 어른거린다. 그때마다 그들의 뒤통수를 놓치지 않고 뒤뚱뒤뚱 따라가는 중이다. 매일 노트북을 열어 한 줄 한 줄 글 줄을 채워 나가며 나는 더 이상 내 나이를 헤아리지 않는다. 세월을 헤아리지 않는다. 괜시리 내 앞을 질러가는 이름들을 담아보지 않는다.       



내가 걸어오는 건지 뛰어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는 1학년 운동회에서도 나는 친구들의 뒤통수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결승선에 닿을 때까지 나의 운동회는 끝나지 않았었다. 

    

뒤통수는 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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