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Aug 26. 2020

적당히 눈을 감아도 될일인데.

촉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일은 그럴 것 같아.' 라고 말하면 보통 그렇게 되고,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얼추 맞아서 사람보는 눈이 좋다는 평도 듣는 편이다. 이 맥락을 따라 혹시 신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무서운(?)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나니까 하는 말인데, 사람에 대한 부분은 내가 워낙 경계심이 많고, 상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능한 두 걸음쯤 떨어져서 상대를 보느라 비교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아서이다. 또한 ‘촉’이라 표현하는 상황에 대한 예측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그 상황에 선뜻 발을 담글 용기가 없는 관찰자 포지션이라 전후사정이 어느정도 객관화 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디테일>이다. 소심한 관찰자 포지션에 일종의 직업병이 더해져, 디테일을 징글맞게 살피는 것이다. 전후좌우, 입체적 전 뱡향으로 디테일을 살피다 보면 어느 한구석 아귀가 맞지 않는 구석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어떤 구멍, 그 구멍에 집중하다보면 상황이 예측되거나 그 사람의 진심이 어느 정도 눈에 보인다.(물론 삽질도 많이 한다. 그렇게 모든 상황에 다 냉철하고 객관적이기만 했으면 나의 지난 시절의 그 오합지졸, 중구난방, 설상가상 기타 등등이 있을 리가 없다.)     





모 인터넷 사이트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렸다. 어떤 상처로 인해 가족들과 등지고 고시원으로 쫓기듯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글로 담으며 알록달록한 이불이 깔린 한 평 남짓한 고시원 사진을 더했다. 사람들의 응원 댓글이 쏟아졌고 그가 생활비가 아쉽다며 3만원에 중고 핸드폰을 판다는 게시글을 본 누군가는 물건도 받지 않고 입금을 해버리기도 했다. 기운잃지 말고 살라는 응원을 더해서.


그는 글을 올려 그 익명의 회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자신의 통장 잔액 3만 몇천원을 인증했다. 그 글 역시 힘내라는 응원 댓글이 쇄도했으며 익명의 천사에 대한 칭찬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가 글 안에 첨부한 그 천사와의 채팅내역을 캡쳐한 사진을 본 나는 그 지나친 디테일이 눈에 거슬렸다. 그 천사와의 채팅에 그는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남기며 전화를 부탁한다고 했다. 새로 산 핸드폰이 무거워 문자를 잘 못한다는 이유였다. 먼저 머리를 쳐든 의문은 새로 산 핸드폰? 형편도 어렵다며 굳이 왜? 그는 나같은 의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판매한 핸드폰은 급한 사정으로 임시로 중고로 산 핸드폰이었는데 상황이 되어 기변을 하고 보니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오게 되어 한 푼이 아쉬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치불구 3만원에 내놓은 그 핸드폰을 누군가가 기계도 받지 않고 3만원을 입금해 줬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핸드폰을 보내야 하니 그 천사에게 주소를 알려달라며 게시글을 올린 것이다. 굳이 자신의 핸드폰 번호와 계좌번호가 드러난 통장잔액을 인증하면서.  음....쌔하다.

   

그 게시글을 본 지 하루가 지난 후에 그에 대한 어떤 글이 올라왔다. 넷플릭스 아이디를 공유하기로 하고 6개월 분을 선입금했는데 무료체험기간 1달이 지나자 유료전환이 되지 않고 이용 불가로 떴다는 것이다. 환불을 요청하니 돈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단다. 이후로 전화는 받지 않는다.     


종종 거짓은 쓸데없이 복잡한 법이다.     


어금니 아빠가 있었다. 지금은 소름 끼치는 범죄자로 끝을 맺었지만 그는 한 때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부정(父情)의 상징이었다.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 그 딸에게 희귀병을 물려준 죄책감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걷던 젊은 아빠.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에게 온정의 손길이 닿았다. 나 역시 그에게 감동했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사연에 관심을 기울였다. 카페도 만들어지고, 그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어떤 글을 올렸다. 오늘따라 너무 힘들고 기운 빠지고 지친다는 것이다. 요는 후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딸의 수술비로 쓸 돈이 모자라다는 것인데, 그가 작은(?)실수를 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얼마 만큼의 돈이 있으면 좋을텐데요. 우리**이 다음 수술을 해 주고, 제 틀니도 새로 바꾸고.”     

오직 딸아이만 고칠 수 있다면 뭐든지 할텐데 모자란 아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걸을 뿐이라던 아빠는, 짧은 글 한 줄에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 버렸다. 눈치 빠른 몇몇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했고 그 아빠는 후원금은 아이에게만 쓰겠다고 약속했다. 뭐, 어차피 후원금인데 아빠 틀니도 좀 바꾸면 안 될 건 뭔가 싶지만, 사람들이 기대한 드라마는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끝내 그 드라마는 잔혹극으로 끝나버렸다.          


그러고보면 디테일한 거짓 안에는 솔직한 욕망이 똬리를 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드러나는 나의 가난이 디테일할 필요는 없다. 뭐 자랑이라고 너줄너줄 인증을 하겠는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이 가난함을 스스로 나서서 디테일하게 설명할 때, 그것은 그냥 구걸이다. 마음 쓰지 마라. 그에게 베푼 선한 마음이 배신 당했다고 화내지 마라. 지나가는 구걸꾼에게 뭘 기대하는가.           






나는 간혹(사실은 수시로) 굳이 안 봐도 될 것들을 집요하게 보느라 괜히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게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라서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종이 댕댕 울린다.     


지난 주말 동안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작업실 창틀에 커피 찌꺼기를 널어 말리느라 안쪽만 닫고 바깥쪽을 열어두고 갔었는데, 와보니 커피 찌꺼기를 담은 통에 물이 흥건했다. 이만하면 다행이네, 그나마 방안으로 물이 안 들어와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뒷처리를 했다. 그리고 한참후에 창틀에 찰랑찰랑 물이 고인 것을 발견했다. 물길을 따라가보니 물은 반대편 창문까지 이어졌고, 그 사이에 눈 뜨고 못볼 만큼 더러운 창틀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팔을 뻗어서 닦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부분, 창문이 열리는 양쪽과 달리 고정되어 있는 가운데 부분에는 아마도 이 집을 지은 이래 한번도 닦지 않았을 먼지가 켜켜히 엉켜있었다.


이해를 돕고자 굳이 창문 사진을 찍었다.


사진 상, 가운데 부분은 움직이지 않게 고정되어 있고 그 부분의 창틀은 오래 묵은 먼지가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내려앉았었다. 괜히 주인 아주머니가 가운데 창에 커튼을 달아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위에 빗물이 찰랑거리고 있으니 상황은 끔찍했다. 그놈의 커피 찌거기가 뭐라고 그걸 말리느라(젖은채로 쓰레기통에서 발효(?)되는게 싫어서 그랬다.) 바깥 창을 열어두고 가서는......     


청소기부터 걸레, 물티슈까지 온갖 도구를 동원해서 창틀을 닦고 팔을 뻗어 기어이 가운데 부분까지 닦아버렸다. 내 집도 아니건만,  내 몸 갈아 넣어 집 주인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다.

어찌 됐든 '당장 눈앞이 개운하니 됐다.' 고 위안 삼았다.

그러나 다음 날, 청소기를 돌리려다가 또 한번 경악했다. 어제 청소기로 빨아들였던 수분을 머금은 창틀의 묵은 먼지가 청소기 안에서 뒤엉켜 에일리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살짝 열어보니 먼지통의 악취는 덤이었다. 그 뒤의 필터꼴은 어떨것인가? 이번엔 청소기를 분해해서 씻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은 촉이와서 사 두었던 니트릴 장갑이 톡톡히 제몫을 했다. 이런 쓸데없는 촉을 칭찬해야 하나? 젠장.

쓸데없이 디테일한 걱정이 잡일을 키웠다. 쓰레기통 안에서 커피 찌꺼기가 발효할 걱정이 눈앞의 에일리언 처치까지 와버렸다.





예전 지인 중에 유독 가난(사람이건, 가난의 모양새건)에 대해서 노골적인 경계와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지인이 있었다. 그때마다 괜히 당황하기도 하고 지레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지금에서 돌아보면 그 디테일이 드러나는 순간 사람 끈적하게 질리게 하는 것이 가난이다. 그래서 그 심리를 지금은 이해하고도 남겠다.      


작업실이라고 명명해 놓았지만 원룸의 한계가 있는 법이고, 더 솔직히 번듯한 오피스텔 대신 원룸을 구할 수 밖에 없었던 내 한계가 있는 탓에 순간순간 코끝을 스치는 작은 주방의 퀘퀘한 냄새라거나, 매일 제대로 된 밥을 사 먹는 비용이 부담되서 도시락 반찬 대용으로 쌓아놓은 3분 요리 류의 레토르트 식품 무더기가 숨이 턱 막힐때가 있다. 그런 날은 그냥 식사는 건너 뛰고 커피나 홀짝이며 현실을 ‘쌩까’는 것도 방법이다. 오늘이 그렇다. (창틀도 좀 쌩깔 것을.)       



   

나의 이야기도 참으로 디테일하지 않은가?

그러나 단언컨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계좌번호 따위 올릴 인간은 아니다.

나는 이 순간에도 가오로 버티는 인간이다.

그마저 없었으면 진즉에 무릎 꺾여 주저앉았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멀쩡하게 살고 볼 일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