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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05. 2023

나를 키우다.

자다가 이불을 뻥뻥 차거나, 분에 못 이겨 벌떡 일어난다.

%#!%&(ㅑ18!! 온갖 상스러운 소리로 욕을 내지른다.     


나만 그랬나?          




사는 것이 내 뜻대로만 되었다면 지금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자리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겠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뜻한 바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쪽으로 된 것이라는 뭐 그런 고차원적인 이야기는 지금은 일단 접어둔다.)     


어제 간만에 요가 수업을 갔었다. 요가원 원장은 ‘대체 얼마만인거에요?’ 하며 반겼고, 나는 ‘첫눈이 오기 전에 만나서 반가워요.’ 라며 실없는 농을 건넸다.      

아직 다 낫지 않은 허리가 아파서 마음껏 움직일 수는 없었고, 천천히 동작을 따라했다. 그리고 잠깐의 명상 시간, 사실 명상은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고 종내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속이 시끄러운 사람이라 그 짧은 시간의 침묵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는 명상 시간을 견딜수가 없었다. 속된 말로 울화통이 치밀어서.      


하지만 모든 것은 익숙해지는 법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고요의 상태를 즐기게 되었다. 다만 완벽한 고요는 여전히 어렵다. 불쑥 끼어든 상념 중 어떤 것들은 부여잡았다가 어떤 것들은 애써 떨쳐내기도 한다.      

어제,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나 좀, 컸네.      




어떤 대상을 향한 분노나 복수를 마음에 담은 적이 있다. 그 복수라 함도 거창한 것은 아니어서 ‘내가 이꼴을 당해? 어디 두고보자. 내가 훨씬 잘 될거야!!’ 이정도의 유치한 감성이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과 아무런 갈등이 없다면 성인(聖人) 이거나 마더테레사 정도 괴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여담으로, mbti 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마더테레사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음.........) 그러나 이만큼 살아보니 나를 키우거나 성장하는 동력은 분노나 복수심이 아니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다룬 정도의 깊은 상처와 처절한 복수가 아닌 다음에야 일상의 복수심이라는 것의 본질은 니 잘못, 내 잘못이 뒤엉킨 파편 정도가 아닌가 싶다. 분명 상처를 받았고, 때론 무언가를 잃기도 하였으나 감당 못할 만큼의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도 좋겠다.      


나를 무시했던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누군가, 입사 면접에서 떨어진 회사, 무수히 낙방했던 공모전, 어느날 갑자기 안면을 바꾼 친한 친구 등, 분노를 품자면 그 대상은 무한하다. 

그래서 보란 듯이 잘 살아보겠노라 이를 갈았다고 한들, 다시 볼 일이 뭐 얼마나 있을까?

나 또한 그러하듯 타인의 삶에 무슨 관심이 그렇게 있겠는가. 

더구나 좋지 않은 결말이었다면 더더욱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굳이?

물론, 긍정이든 부정이든 삶에서 만난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그 흔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그냥 내 삶이다.      

 

결국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나의 몫일 뿐이다.     


분노할 시간에, 억울해 할 시간에, 지나간 복수심에 이불을 걷어찰 시간에 나를 아끼는 것이 맞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야 할 일이다. 


쉽지는 않다.


많은 것들 중에 특히나 같은 자리에 서 있다가 나보다 앞서간 이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뻐근하고 머리가 딱딱 아프지만, 그건 그들의 삶이고 질투하고 분노한다고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베알은 배배 꼬인다. 쿨한 척 번지르르 글을 쓰고 있지만 사람은 역시 완벽하지 않아서 나도 뭐 그렇다는 것이다.

그저 애써서 그 자리에 내 성취와 기쁨을 채워 넣으며 조금씩 베알꼴림을 치료중이다. 




가만히 보니 살아냄은 말 그대로 生이라, 단 한 순간도 멈춰있지 않았다.     

여전히 미약하지만 나는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이만큼 살아내서 기특하다. 

( 왜 요모냥 요꼴이냐고 스스로 쥐어박는 순간이 더 많다.)    



네이버에 이름 치면 절대 안 나오는 무명이지만, 작가는 작가니 일단 되었고.

그 다음은 또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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