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Oct 24. 2023

월동(越冬)의 시작.

3년 여 전, 처음 작업실을 구하겠다고 마음먹고 방을 보러 다닐 때 나는 방을 볼수록 기운이 빠졌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정말로, 자다가 벌떡 일어났었다.) 실행한 일이라 사전 준비도 가용예산도 한 없이 부족했었다. 그러니 그저 당장 구할 수 있는 싼 방이 최선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교차로' 등의 지역정보지와 휴대폰 어플로 적당한 가격대의 방을 물색했고, 심지어 주택가 대문에 붙은 <월세방 있음> 종이를 보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예산 범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방의 상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분명히 1층인데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아 곰팡내가 코를 찌르는 방, 여섯 개의 방이 현관문 하나를 공유하는 방, 입구부터 담배 냄새에 머리가 아픈 방, 세면대가 부서져 없어진 자리에 때에 찌든 세숫대야가 놓여있는 방, 조건이 괜찮다 싶어 전화했더니 한 달 후에나 입주가 가능하다는 방 등 모든 것들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자다 말고 뛰쳐나온 가난한 무명작가의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그러던 중에 지금 머무는 원룸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방은 깔끔했고, 월세도 적절했다.      

전화를 하고 찾아간 곳은 큰 길가에 자리잡은 2층 주택이었다. 매물 안내에는 1층이라고 되어있었지만 1층 방은 다 나갔고 2층에 방이 하나 있다고 했다. 2층은 주인 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한쪽을 원룸으로 꾸며 세를 놓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유로 원룸만 들어찬 1층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나는 그 방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벽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창이 좋았다. 보기만 해도 살 것 같았다.


이 창이 좋았다. 


내가 마음에 드는 기색을 비추자 주인내외분이 ‘혼자 지내실 거냐?’ 며 물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인데 숙식은 거의 하지 않을 예정이며 주로 낮에 작업실로 쓰겠다고 했더니 그분들 또한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단, 담배는 안된다고 해서 나는 비흡연자라고 말했다. 당장 계약이 성사되었다. 


    



이 방은 서향이다. 특히 저녁에 큰 창을 꽉 채우는 노을이 진심으로 예쁘다. 

거의 매일 만나는 이런 노을. 


그러나 이 방의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추웠다. 정말 추웠다. 

겨울이 되면 그 큼직한 창으로 한기가 스며드는데, 이건 진짜 영혼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한 겨울, 이 방에서 몇 시간만 앉아있으면 '뼈가 시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일러를 팡팡 틀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겠으나 나는 ‘가난한 무명작가’ 아닌가. 사실 이 방을 선택한 것은 창문도 창문이고 뷰도 뷰지만 월세가 저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비슷한 크기의 다른 방에 비해 대략 10만 원 정도 저렴했는데 그것에는 여려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이 방의 난방방식이 <심야전기온돌>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괴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심야전기, 그것은  예전에 전기가 남아돌던 시절에 만들어진 '구시대의 유물'이다. 사용량이 적은 야간시간대의 전기를 이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저렴한 심야전기요금으로 전기를 쓸 수 있다. 별도의 회선으로 관리되며 아침 9시가 되면 파티장에 온 신데렐라처럼 황급히 사라진다. 


심야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하는 이 방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만 난방이 들어온다. 그것도 물을 데워서 보일러를 트는 방식이 아니라 방바닥의 온돌을 직접 데우는 방식이다. 그렇게 데운 열기로 하루를 나야 하는 것이다.  가스보일러처럼 잠깐식 켰다 끌 수도 없고, 하루 종일 춥지 않게 방 전체를 뜨끈 뜨근하게 데웠다가는 전기요금 폭탄에 방이 아니라 내가 뜨거워질 것이다.   

        

첫겨울은 너무 추워서 방안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들어가 글을 썼다. 


저 안에 내가 있었다.. 안에서 보는 풍경은 까꿍??


(그때 썼던 글이 있었지만 난데없이 조회수가 폭발하는 통에 조회수가 5만을 넘겼고 나는 온 동네에 나의 가난과 추위를 쩌렁쩌렁 떠들기가 쪽팔려서 글을 내렸다. )      


두 번째 겨울부터는 큰 창을 비닐로 막았다. 비닐로 막힌 창밖을 바라볼 때마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을 빼앗은 작업실의 큰 창은 겨울만큼은 애물단지였다.  그래도 창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10월이다. 아직은 가을이지만 곧 겨울이다. 더구나 이 곳은 춥기로 소문난 동네라 곧 날카로운 겨울이 들이닥칠 것이다. 월동준비를 해야 했다.     

창 앞에 있던 작은 테이블을 책상 뒤로 옮겼다. 난로를 꺼냈고, 책상 앞에서 신을 털신을 준비했다. 얇은 패딩조끼도 꺼내놓았고, 무릎담요와 스카프도 준비했다. 이번 겨울이라고 보일러를 팡팡 틀 여력은 없으니 이것으로 겨울을 나야 할 것이다. 이만하면 살만 할 것이다.     

다만, 창문의 비닐은 가능한 늦게 치려고 한다.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책상의 위치를 바꿨다. 뷰 좋다고 창 가에 앉아있다가는 냉동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얼마간 계속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복잡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렇게 고민과 걱정을 끌어들이더니 결국 고장이 나버렸다. 고장 난 로봇처럼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난데없이 울기를 며칠,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으니 그냥 하자고 마음을 정리했다. 뭘 했는데도 안된다고 한들 뭐 그건 그때 생각하고. 단, 제대로 하는 것으로. 



월동, 겨울나기.

나는 사람이라 개구리처럼 땅굴을 파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 나의 작은 방에서 고요히 버텨내기로 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리가 없는 것'에 대한 의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