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밤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를 마치고 나서 괜히 목욕탕 기분을 내고 싶었다. 머리에 수건을 둘둘 만 채로 냉장고의 바나나(맛) 우유를 꺼내 빨대를 꽂아 쪼로록 마셨다. 공들여 젖은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살랑살랑 걸어서 도서관에 갈까. 책을 한 권 다 읽고 와야겠네. 공장문은 휴일이니까 닫아야지.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켰었지.
순간 명치끝이 조였다. 뭐지? 체기가 있나? 소화제를 먹고, 매실액을 마셨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셈이었다. 그러나 소화불량이 아닌 것 같다. 불쾌하게 침범하는 느낌, 몇 번 경험해 보니 몸이 알아차렸다.
또. 위경련이구나.
숨이 막히고 등이 뻣뻣해진다. 어디서 본 대로 따뜻한 설탕물을 마셨다. 잠시 진정이 되는 것 같았지만 다시 고통이 뻗친다. 이번에는 손발을 셀프로 찔렀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잘 체하다 보니 손발을 찌르는 도구(?)도 갖추고 있음이다. 피가 났다. 독하기도 하지. 제 살을 제가 찌르다니.
피를 보니 조금 호전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잠들면 괜찮아 질 것이다. 깜박 잠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곧 구토를 시작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또 응급실.
일요일 새벽 2시였다.
수액을 달고 이런저런 혈객 검사를 했는데, 응급실 의사는 ct까지 찍으라고 한다.
‘뭔 ct 까지?’ 속으로 군시렁 거렸으나 환자가 무슨 힘이 있나, 하라는 대로 얌전히 만세!를 부르고 기계안으로 들어갔다.
소변 검사도 하란다. 이미 새벽 3시를 넘겼으니 지치고 질렸는데, 또 무슨 검사?
“소변검사요? 왜 해야 하는 걸까요?”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게 임신 반응검사를 필수로 해야 해서요.”
풋.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니, 세상이 놀랍도록 발전하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블루투스 임신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그럴리 없지만(반응이 나오면 블루투스 임신으로 논문에 실어야 할 것이다.) 하라는 대로 소변검사까지 했다.
‘아, 집에가고 싶어. 따뜻하고 푹신한 내 침대에서 자고 싶어.’ 불편한 응급실 침대에 누워 내내 그 생각만 반복했다.
다시 의사가 왔다.
“담관벽이 두꺼워졌어요.담관염(담낭염?) 초기인 것 같은데, 외래에서 복강경으로 잘라내시면 됩니다.”
일단, 무슨 염증이 초기라고 한다.
이단, 그런데 뭘 자르란다.
삼단, 뭔 소리야? 일단 알겠다고 하고 집에가서 자자.
나는 그저 참고사항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진료를 받으라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알겠다고 하니 외과로 가서 바로 진행하면 된다고 예약을 잡아준단다.
네??????
아니 무슨 쓸개 떼라는 얘기를 삐져나온 코털 잘라내라는 듯 그렇게 담백하게 하는가?
그러니 내가 별것 아니라 생각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이 상황이 응급을 요하는 것이냐 물었더니 당장 응급수술을 할 일은 아니지만 며칠내로 해야 하는 것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대략 반복적으로 아플 것이고, 결국 위협적이라는 얘기)
복통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얼른 집에가서 눕고 싶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되지만 늙어가는 딸의 어딘가를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늙은 엄마는 말한다.
“내가 그나마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 때 해 치워. 그게 나을 거야.”
그렇지. 나조차도 수술의 위험이니 이런것 보다 '당장 보호자가 없는데?' 생각을 먼저 했었다.
당신 몸 하나 건사하기 숨 가쁜 병든 노모 (말 그대로 노모)를 보호자로 세워놓고, 내가 전신마취를 하고 쓸개를 뗀다고?
아우, 몰라. 어지럽다.
어쩌면 나는'쓸개빠진 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