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른, 아홉』의 단상
노래를 들을 때, 가사보단 멜로디를 집중해서 듣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익숙했던 멜로디 너머로 가사가 유독 꽂히는 노래들이 있다. 얼마 전, 운전 중 셔플로 나온 폴킴의 『우리 만남이』가 그랬다. 내 나이 37세, 작년에 만났던 그가 가사에 대입되면서.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우리 만남에 뭐 있겠어 우리 이별이 가슴 찢기도록 아프진 않았지만 슬플 거야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우리 만남에 뭐 있겠어 그래도 우리 좀 친해지긴 했지만 서로 눈물 보일 것까진. 그리울 거야 인생은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인생은 무뎌지고 아파하며 익숙해져서 다시 그땔 그리워해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이 나이에 뭐 있겠어 즐거웠다 또 만나자 어 연락해 말해도 한동안 또 안 볼 사이 그리울 거야 인생은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인생은 무뎌지고 아파하며 익숙해져서 다시 그땔 누구나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우리 만남이』, 폴 킴 정규 2집 가사-
작년 한 해, 사계절의 가장 이쁜 날들에 보았던 그와의 만남은 특별하지 않았고, 가슴 찢기게 아픈 이별도 아니어서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지만, 난 분명 그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쩌면 특별하지 않아서, 가슴 아픈 이별이 아니었기에 더 오래도록 그리운 게 아닐까. 아쉬운 마음이 가득해서.
“내 인생이 고요하고 천박했는데, 니가 나타나서 꽂혔다는 말이잖아요 지금!!”
서른아홉의 술에 취한 선우(연우진)가 10년 만에 꽂힌 서른아홉의 미조(손예진)에게 소리 지르며 고백한다. 일 년동안의 휴식을 위해 곧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 여자에게 하필 꽂혀버린 남자는 술의 힘을 빌려 찡찡거리며 마음을 전한다. 잠시 어색하게 눈치를 보다 선우는 다시금 혹시 그녀가 못 알아들을까봐, “나 지금 고백한 거예요. 좋아..해도 되죠?”라고 말한다. 우리 둘 다 너무 취했다고 당황한 척 대답하는 그녀를 두고, 선우는 코맹맹이 소리를 탑재한 귀여운 목소리로, “푸욱~자고 술 깨서 다시 고백할겡.. “ 라고 말하며 구부정하게 떠난다.
현재 JT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서른, 아홉』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며, 잊으려 노력했던, 그가 더 그리워졌다.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특별했었고, 내 나이 서른일곱에 갑자기 나타나 꽂혀버렸는데, 얼렁뚱땅 선우처럼 술기운이라도 빌려 고백도 못 했다. 이 나이에 뭐 있겠어? 하다 만나버린, 이제는 그리워져버린, 그.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어도, 벌써 나를 잊어버렸다면 너무나 슬플 것 같다.
다시 고요해진 내 인생에, 그리고 서른아홉을 바라보는 지금, 선우의 미조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드라마는 너무 드라마 같지만 가끔은 내 인생의 드라마를 불러오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