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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un 01. 2022

해방, 그리고 추앙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내며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오랜만에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추앙”이라는 단어였다. 분명 아는 단어인데, 누군가의 음성으로는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 생소한 단어를 주인공의 목소리로 들었다. 미정(김지원)이 추앙하라는 말에 남자 주인공 구 씨(손석구) 역시 나와 같이 사전으로 이 단어의 뜻을 묻는다. 


 존경, 사랑의 뜻으로는 부족한 단어. “추앙”. 음성으로 내뱉으면 다소 귀엽기도 하지만 그 뜻은 경이로울 정도로 숭고하다. 마음이 한참 비워진 드라마 속 주인공 남녀는 서로의 마음을 채워주기 위해 작정하고 “추앙”하기로 약속한다. 


 작정하고 마음을 채워주기로 한 남녀는 한참을 소식을 모르고 떨어져 있어도 엉뚱한 곳에서까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결국, 어떻게든 찾아 자연스레 만난다. ‘사람’으로부터 해방을 원했던, 서로 너무 닮아 있어서 자석처럼 끌렸던 한 남녀. 그들에겐 사랑도, 존경도 아닌 ‘추앙’이라는 단어가 완벽했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이 생소한 단어를 두고 대본을 여러 번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를 규정하는 이토록 적확한 명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탁월했다. 한참 후에 만난 이 남녀는 서로 그리워한 시간만큼 추앙이 늘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조금은 어렵게 어렵게 서로에게 ‘추앙’이라는 마음을 갖고 다가간다. 

 미정이와 구 씨는 서로를 ‘추앙’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지긋지긋한 사람으로부터 ‘해방’된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해방’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미정이와 구 씨의 해방이 완료되는 순간엔 어쩌면 서로에게 보내는 추앙도 끝날지 모르지만, 지금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괴로운 현실로부터 멀어진다.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마음을 느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애정이고, 사랑이고, 존경이고, 추앙이다. 날 존경해주고,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후로, 날 추앙해주고, 내가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 사람을 찾는 데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르지만, 날 괴롭게 하는 무언가로부터 해방시켜줄 그 사람. 어딘가 분명히 있겠지. 지긋지긋한 회사 생활에 화가 난 미정이가 구 씨네 집 앞 평상에서 담배를 피우려던 순간 톡, 하고 떨어진 밤송이처럼, 그렇게 엉뚱하게, 어디선가, 나타나겠지. 


 내 사람을 찾는 데 더 어렵게 만든 또 하나의 내 인생 드라마, 희로애락을 모두 가진『나의 해방일지』. 널 추앙한다. 이것만은 알아둬라. 나 너 진짜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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