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사랑에 대하여』를 읽으며
“사랑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복잡한, 그래서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헤겔이 말한바 “가장 괴이한 모순”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유일하게, 모순과 부조리의 골짜기에서 신음하는 우리에게 손을 뻗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게 우리가 사랑의 본질을 향해 거듭 물음을 던지는 이유다.”
-장석주, 『사랑에 대하여』-
장석주 작가가 말하듯, ‘사랑’은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도저히 풀 수 없지만 계속해서 풀어나가고 싶은, 기이한 인생의 질문이다.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이별한다.
안타깝지만 영원한 사랑도, 변하지 않는 사랑도 없다.
사랑의 크기는 시간에 의해 작아지고 잊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를 꿈꾼다. 아니 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깨우고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사랑은 나를 창의적으로 만든다. 해답이 없는 문제는 도전정신을 부르고, 욕망을 키우며 불안을 촉진한다.
이 복합적인 상황은 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창작자인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이 고귀한 경험은 한 사람이 아닌
, 여러 사람과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당신의 영혼이 그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당신의 시간은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누군가와의 연관 속에서만 그것을 쓸 수가 있다.
당신의 시간을 나누고 쓰려는 자는 당신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획한다.
그는 타자라는 이름의 유령이다. 당신의 시간은 그 유령에게 저당 잡혀 있다.”
-장석주, 『사랑에 대하여』, 76p-
사랑이라는 거대한 목마름을 가진 채로 만난 그와 나는
한 자리에서 다섯 시간을 이야기할 만큼 통하는 것이 많았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의 이야기로 채워지기 마련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내 시간까지 풍성하게 채워지고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코로나 확진에 의해 격리로 만나지 못했던 2주 동안엔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로 채워졌고
우리의 사랑은 깊어져 갔다. 그와 나의 시간 속엔 각각의 역사가 쌓이며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미래는 오래 가지 않았다.
당시 그는 일에 유독 지쳐 있었고, 신나서 하던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듣는 쪽이었던 나는 말하는 쪽이 되었고 대화라기보단 독백에 가까운 형태로 둘의 시간이 채워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난 유령의 시간을 뺏는 데 실패했다.
나와 이별한 그는 자기 시간을 더 이상 나에게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했던 그는 고독이 필요하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남기고 나를 떠났다.
계절에 쉽게 속아 시작된 사랑은 또 다른 계절과 함께 쉽게 끝이 났다.
쉽게 시작된 사랑일지라도 이별은 그리 쉽지 않다.
연애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타자라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그와의 새로운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시간에 흥미로워하기도 하며, 어떤 시간엔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자기 시간을 온전히 혼자 쓰길 원했다.
이는 나를 덜 사랑한다는 뜻으로 여겨졌고, 나 역시 고독한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을 아깝지 않게 다루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수행으로 여겨진다.
사랑을 할 때도 그렇다. 타자라는 유령의 시간에 내가 완전히 잠식당하고 저당 잡힐 준비가 되어 있나?
이 질문에 명확히 YES! 라는 답변이 가능한 유령이라면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 역시 그의 시간을 나눠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같은 ‘시간’을 나누고 함께 채워 쓰는 것.
책을 좋아했던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사랑에 대하여』를 읽으며
이 “괴이한 모순”을 여전히 탐하는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유령을 생각한다.
그리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줄, 날 새롭게 태어나게 해줄,
나만의 유령을 찾아 오늘도 수많은 타인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