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한 남녀가 있다. 남자는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형사로, 여자는 피의자로 만났다. 산에서 ‘마침내’ 죽은 남편의 아내, 지독한 불면과 부부 권태기를 앓고 있는 형사인 그들은 ‘물에 잉크가 번지듯이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격렬한 스킨십 장면이나 야한 대사 하나 없는 이 영화는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뜨거운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다. 하지만 그들이 대놓고 사랑하기에는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형사와 피의자 사이. 살인을 저질러야만 만날 수 있는 남자를 보기 위해 그녀는 ‘붕괴’되어 다음 남편의 죽음과 연관된 피의자로 그를 다시 마주한다.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무도 못 찾는’ 깊은 바닷속으로 스스로를 버리면서 영화는 종결된다.
박찬욱 감독의 지적이고 섹시한 연출과 플롯은 불륜 관계의 남녀를 이토록 아름답게 그렸다. ‘한국에서는 결혼하면 좋아하기를 중단’해야 하므로 어쩌면 도의에 어긋난 둘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눈치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그 어떤 것보다 애절하고, 지독하고, 아름다운 사랑 영화이다. 만날 방법이 살인밖에 없다면 기어코 살인을 저질러서라도 그의 눈앞에 나타나기를 마다치 않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박제된, 강력계 형사에게 ‘미결 사건’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영겁의 사랑이 존재하기는 할까?
*작은따옴표 안의 단어는 『헤어질 결심』(2022)의 명대사를 활용했습니다.